최근 몇 년 동안 하나님은 대단히 인격적인 분이시라는 것을 많이 배웠다. 강요하시기보다 우리의 자유의지를 대단히 존중하시는 분.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고 우리를 위해서 일하시지만 눈에 확 드러내기보다 은밀한 중에 보시고 은밀한 중에 움직이기를 선호하신다(마 6:6). 그래서 기적을 베풀어도 경험한 장본인은 확실한 기적으로 인식하지만 그것을 전해들은 사람들은 그냥 우연히 일어난 것처럼 여겨지는 경우가 많다.
성경의 많은 기적은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특정한 시대에 집중되어 있다. 400년이라는 긴 기간 강대국 애굽의 노예에서 해방시켜 하나님의 백성의 정체성을 확실히 세워야할 시기인 모세시대, 아합왕조와 같이 배교가 가득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할 엘리야 시대, 정치적 메시아관에 인박힌 유대인들에게게 고난 받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예수를 하나님이 약속한 메시아로 받아들이고 증거해야 할 복음증거의 시대에는 확연히 보여지는 기적이 필요했다.
그러나 그 외의 많은 시간대에는 ‘하나님은 정말 살아계신가?’ 의심이 될만큼 긴 침묵의 세월이 많았다. 그의 수건만 올려도 병이 다 나았던 바울이 그의 영적 아들 디모데의 건강을 염려해서 물대신 포도주를 약간 먹으라고 처방한 것에는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딤전 5:23).
기적이 일상처럼 일어나면 우리에게 주신 자유의지는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일일이 우리의 다급하고 절실한 문제들에 하나님이 기적으로 다 개입하신다면 차라리 우리들이 하나님에 의해서 프로그램화 되어서 움직이는 인공지능 인간이 되는 게 더 낫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세상이 우리 인간이 하기 나름이라는 뜻은 아니다. 우리의 자율과 하나님의 주권이 전혀 충돌되지 않고, 도리어 하나님의 의도하신 그분의 궁극적인 뜻대로 이뤄지는 방식으로 세상은 돌아가고 있다.
하나님은 가끔씩 보여지는 기적을 일으키시지만 대부분은 나의 오감으로는 거의 눈치채지 못하는 방식으로 영적, 정신적, 물질 세계에서 수없는 기적을 행하고 계신다. 그래서 천국에 가보면 지난 내 삶에 하나님께서 얼마나 철저히 개인적으로 친밀하게 함께 해 주셨는지를 보고 깜짝 놀라게 될 것이다.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하나님께 불순종한 사람들을 보면서 참 어리석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데 우리들은 그때를 해석한 성경을 보니까 그런 생각이 들지만, 그때 사람들도 오늘 우리처럼 숨어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상대했다. 지금도 하나님은 그때의 선지자들처럼 우리에게 많은 메신저들를 보내고 계시지만 과거처럼 약간의 찔림만 받을 뿐 무시하며 살아간다. 어떤 경우에는 내 상황에 거스리는 내용이다 싶으면 불쾌하게 여긴다. 그렇게 행동해도 하나님의 즉각적인 징벌은 없다. 그래서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는 너무나 불순종의 길을 쉽게 선택하며 살아간다.
두렵다. 우리의 마음의 동기까지 판단하는 하나님이시지만 숨어서 보기만 하시고, 경고의 말씀을 반복해서 전달하셔도 우리가 무성의하게 지나쳐버리고 싶으면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 하나님이 인격적이서 감사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래서 두렵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