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을 좀 오래 믿다 보면 하나님이 얼마나 대단한 분이신지를 알게 되고, 또 그런 은혜와 능력을 경험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자연히 갈망하는 마음이 생긴다. 그래서 어디 은혜로운 집회, 성령의 은사를 경험하는 모임이 있다고 하면 신자들이 우루루 몰려다니기도 한다. 나도 한때 그것에 관심이 많았고, 목사로서 누구보다 그런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이 내 삶과 사역에 일어나기를 사모했었고 지금도 그런 마음이 여전하다. 그런데 성경을 계속 더 알아가고, 경험도 쌓이고, 여기저기 듣고 보는 것이 많아지면서 분별이 되고 정리가 되는 것들이 있다.
예수님이 일으키신 모든 기적들을 보면 공통적인 것이 있는데 그것은 ‘믿음’과 ‘긍휼’이었다. 믿음은 기적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있었고, 긍휼은 그 기적을 행하는 주님에게 있었다. 그런데 우리의 믿음이라는 것도 알고 보면 주님의 긍휼에 대한 신뢰에서 나오는 간절함이어서 우리의 믿음보다 앞서는 것이 주님의 긍휼이다. 주께서 긍휼이 많으셨기 때문에 많은 병자들의 믿음에 마음이 동하여 기적을 베푸셨던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의 모든 기적은 그분의 사랑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래서 최근에 내가 크게 깨달은 것은 하나님의 사랑의 인격을 닮아가는데 헌신할수록 그분의 기적이 따라온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모든 계명은 내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라는 말로 요약된다(갈 5:14, 롬 13:8-10). 그 하나님의 말씀을 짜고 짜서 나오는 액기스는 ‘내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는 것이다. 거룩하게 살아간다는 것은 세상과 구별되어 하나님의 성품의 표현인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을 말하는데, 결국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듯 사랑하는 것을 말한다. 예수님이 유일하게 새롭게 추가한 계명도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었다. 이것이 새로운 계명인 이유는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한’ 정도에 있어서 이전과 달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거룩하게 사는 것과 지극히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동일한 말이다. 하나님의 능력, 그분의 강한 임재는 거룩하게 살아갈 때 나타나는 것인데, 그 말은 내가 사람을 더욱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갈수록 하나님의 능력이 내 삶에 드러난다는 뜻이다.
믿음생활은 사람을 사랑하는 삶인데, 그냥 친절하고 마음씨 고운 정도가 아니고, 마음이 너무 상하고 억울하고 화가 나고 몹시 미워지는 상황에서도 그런 대상을 사랑하기로 결정하는 것이다. 아브람이 재산이 너무 많아져서 땅이 비좁아 조카 롯과 갈등이 있었을 때 ‘너나 나나, 너의 목자나 나의 목자나 다투지 말자. 왜냐하면 우리는 서로 골육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즉 우리는 절대로 싸울 수 없는, 싸워서는 안 될 관계라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매일 이렇게 외친다. “사랑할 때 하나님의 능력이 임한다.” “사랑하기로, 더욱 사랑하기로 결정한다.” “가족과 성도는 오직 사랑해야 할 대상이다.” “원수는 오직 하나 사탄밖에 없다.”(엡 6: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