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5장의 포도나무와 가지 비유의 뒷부분(9-17절)에서 주님이 말씀하신 핵심은 ‘내 사랑 안에 거하라’였다. 그 사랑은 성부가 성자를 사랑한 것과 같은 깊은 사랑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 사랑 안에 우리가 거할 수 있는 지에 대해서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서 그 사랑 안에 거했듯이 너희들도 내 계명을 지키면 그렇게 될 수 있다’ 하셨다. 그리고 이어서 그 계명은 바로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라 하셨다.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한 것처럼 사랑한다? 어떻게 그런 사랑을 내가? 그런데 이런 사랑을 행할 때 어떤 일들이 일어날지에 대해서 놀라운 약속을 하셨다. 성부가 성자에게 한 모든 말을 다 들을 수 있는 예수님의 친구가 되고, 항상 열매를 맺는 삶을 살고, 무엇을 구하든지 다 응답받는 자가 되고, 예수님이 가지고 있는 기쁨이 우리 안에서 넘치게 된다고 하셨다.
그렇게 보면 착한 정도가 아닌 하나님과 같은 사랑을 행하는 인격이 되어야 하나님의 동역자가 되고, 그분의 임재와 능력이 함께 해서 놀라운 열매를 맺는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모든 연단의 핵심은 하나님의 성품을 기르는 것이고, 그 성품이란 죄인된 우리를 위해서 독생자까지 주시는 그 인자와 사랑이라 할 수 있다. 돌아보면, 나의 모든 갈등과 고민과 가슴앓이를 통한 연단의 핵심은 그분과 같이 사람을 사랑하는 인격을 만드는 것이었다. 지금도 그런 연단을 받고 있다.
사무엘하 1장을 보면, 다윗이 사울과 요나단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슬퍼서 애가를 지은 내용이다. 요나단의 죽음에 대해서 그렇게 한 것은 이해가 되는데, 평생 자기를 죽이려고 쫓아다닌 사울을 그와 동일 선상에 놓고 노래까지 짓고, 그것을 백성들에게 가르칠 정도로 슬퍼할 수 있을까? 그의 ‘진심’에 대해서 의문이 든다 할 정도로 이해할 수 없는 사랑을 보여주었다.
이런 사랑을 행할 인격으로 세워졌을 때 즈음에 다윗의 연단은 끝나고 이스라엘의 왕이 되는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주의 사역을 한다는 것, 많은 열매 맺는 삶을 산다는 것은 결국 나의 인격이 이런 하나님의 인격을 얼마나 닮았느냐와 연결되어 있다.
“주님, 아직도 부족한 저의 인격을 봅니다. 주님의 그 사랑의 인격을 닮고 싶습니다. 먼저 그렇게 될 수 있게 도우시는 성령을 주셨으니, 그분을 더 의지하며 의에 이르는 연단과 징계를 잘 받아들여서 주님처럼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게 이끌어 주소서.”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이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벧후 1: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