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믿음의 여정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처참하게 죽으셨다는 것을 믿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이 부분에서 많은 사람들이 복음에 대해 거부감을 느낄 것입니다. 지금 믿음 생활을 하고 있는 신자들도 예외가 아니죠. ‘내가 도대체 뭘 그렇게 잘못했기에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셔야만 했는가? 그렇게밖에 해결할 수 없을 만큼 내 죄가 큰가?’라는 질문이 들거든요.
저도 그랬습니다. 처음 교회에 왔을 때 제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인정하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구원받은 지금도 자신의 죄성을 부정할 때가 종종 있죠. 저는 살면서 특별히 강도 높은 범죄를 저지르지는 않았거든요. 남들에게 큰 피해를 준 것도 없구요. 제 나름의 윤리관으로 선과 악을 판단할 수 있었고, 악행은 지양하고, 선행은 지향하는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스스로에 대한 의심이 들었습니다. ‘내가 처한 환경이 완전히 바뀐다고 하더라도 나는 이 윤리관을 지킬 수 있을까?’ 제가 자란 환경을 생각하면 그 안에는 특별히 악한 성품이 생길만한 요소가 없었습니다. 일단 저는 전반적으로 치안과 교육 시스템이 좋은 대한민국에서 태어났습니다. 가정 환경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인품 훌륭하고 성실하신 부모님들 덕분에 특별한 어려움이나 갈등 없이 평안하게 잘 살았습니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누구나 바른 윤리관을 형성하기에 충분한 환경에서 살았던 거죠.
만약 제가 소말리아 같은 극단적인 환경에서 태어나 자랐다면 어땠을까요? 해적질과 같은 범죄를 저지르지 않으면 재정적으로 어려워지고, 사랑하는 가족의 생명도 지킬 수 없는 상황에 처한다면… 저는 지금의 제 윤리관을 지킬 수 있을까요? 솔직히 자신이 없네요. 결국 제가 쌓아온 선은 좋은 환경이 만들어준 특권일 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환경에 따라 언제든지 무너지고 변할 수 밖에 없는 연약한… 같잖은 윤리관에 불과하죠.
저는 언제든 환경에 따라 범죄자가 될 수도 있고, 악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제 안에는 상황만 갖춰지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죄성이라는 폭탄이 있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구요. 그것이 나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입니다. 좋은 환경과 인간적인 노력으로 쌓은 선으로는 절대 하나님 앞에 공의를 주장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복음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의 죽음이 아니면 저의 죄성은 절대 해결될 수 없습니다.
오늘 예배를 통해 다시 한번 하나님 앞에 죄인으로 무릎을 꿇기 원합니다. 제 자신이 얼마나 흉악한 죄인인지 다시 깨닫고, 회개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그 죄를 해결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하신 위대한 일… 복음의 은혜를 다시 누릴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