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하고, 이런 저런 선교단체에서 훈련도 많이 받았다고 하는 데도 교회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이 있다. 교회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교회는 우리의 신앙과 삶의 든든한 버팀목이다. 하나님께서 나의 믿음을 보호하고 또 자라도록 하기 위해서 창세전부터 계획하신 것이 교회였다. 그래서 교회에 대한 이해가 잘못되어 있는 사람을 보면 어딘가 모르게 그 믿음이 항상 허약하다.
교회가 무엇인가에 대해서 설명할 때 바울이 가장 많이 말한 것은 ‘그리스도의 몸’이었다. 우리의 몸에다 교회를 비유하면서, 머리는 예수 그리스도이시고 그 몸은 교회라고 했다. 이것의 의미는 머리와 몸이 서로 떨어질 수 없는 밀접한 관계에 있듯이 예수님과 교회는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뜻이다. 바울이 이런 생각을 갖게 된 이유는 그가 처음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을 때의 경험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는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교회를 무척 핍박하던 사람이었다. 얼마나 유대교에 열심이 있었든지 시리아 다메섹까지 거기 숨어있는 그리스도인을 잡으러 공문을 받아가지고 군인들을 데리고 갈 정도였다. 그런데 그곳에 다 이르렀을 때 즘 정오의 태양보다 더 밝은 빛으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셨다. 그분이 하신 첫 마디는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였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바울이 박해한 사람은 예수님이 아니라 교회였다. 그 당시에 예수님은 승천하셔서 하나님 나라로 올라가신 후였다. 이 회심의 사건으로 바울이 충격적으로 알게 된 사실은 교회와 예수님은 분리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 체험 때문에 교회를 말할 때 그는 항상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말했는지 모른다. 그러므로 교회를 멀리하는 것은 곧 예수님을 멀리하는 것이다. 교회를 사랑하고 섬기는 것은 곧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섬기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교회를 이해한다는 것은 우리가 교회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머리 되신 그리스도가 보내어 거기에 두신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제 하나님이 그 원하시는 대로 지체를 각각 몸에 두셨으니”(고전 12:18) 이 말은 나를 중심에 두고 교회를 생각하지 말고, 교회를 중심에 두고 나를 생각해야 한다는 말이다. 나의 필요를 따라 이곳저곳 여러 교회를 순회하면 안 된다. 교회는 내가 선택하는 것 같지만 기도하면서 주님의 인도를 받아서 그분이 있으라 하는 그곳에 자리를 잡는 것이다. 그렇게 했으면 그 교회의 권위 하에 들어가서 섬기며 순종해야 한다. 교회가 나에게 맞춰주기를 기대하지 말고 내가 교회에 맞추어가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래야만 그 교회를 통해서 흘러 보내고 있는 주님의 확실한 은혜를 누릴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무슨 세미나나 강연에 참여하듯이 예배를 참석하고 약간의 감흥을 받는 듯 한 얄팍한 신앙생활만을 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교회는 깊숙이 들어가야 한다. 그렇게 할 때 그 교회 중심에 계신 그리스도를 깊이 알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