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EN MIND

“율법과 복음의 차이 2” – 이영주 목사

신약성경 여기저기에 율법과 복음에 대해서 비교하는 구절을 볼 때마다 ‘그래서 율법이 지금도 필요하다는 말이냐 필요 없다는 말이야?’ 궁금해 할 때가 많다. 율법은 좁은 의미로는 모세오경(창세기~신명기) 안에 들어가 있는 계명과 갖가지 의식과 관련된 규례이지만 좀 더 넓은 의미로는 모세오경 전체 혹은 구약성경 전체로 볼 수도 있다. 그런데 사실은 더 크게 확대할 수도 있다. 로마서 2:14-15절을 보면 모세의 율법을 전혀 모르는 이방인들이 본능적으로 갖고 있는 양심을 일컬어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에 이 세상을 바르게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훌륭한 가르침을 다 율법의 카테고리 안에 넣을 수 있다.

그렇게 보면 율법은 그 성격상 좋은 것이다. 바울도 ‘율법은 거룩하고 계명도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하도다’(롬 7:12)라고 말했다. 그런데도 율법을 부정적으로 말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율법 자체이기보다 그것을 지키려고 하는 우리 자신에게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분명 율법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기 때문에 완전한 것인데도 정작 그것을 지켜야 하는 우리 자신이 부패하고 타락해 있기 때문에 결국 남는 것은 내가 그 말씀대로 살지 못한다는 심한 내적 죄책감이고, 아는 것과 실제 삶이 너무 다른 이중적인 삶이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보내신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면 감사할 일이지만 만일 끝까지 자신의 의지를 믿고 그 지침들을 지키려고 한다면 그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그런데 사람이 만든 세상의 종교들이 엄격한 고행을 강조해서 사람을 피곤하게 만들고 있고, 서점의 자기개발서들이 그렇게 유혹해서 책을 팔아먹고 있다.

이처럼 율법은 분명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렇게 세상을 살아가라’고 주신 말씀이니까 당연히 좋은 것이지만 문제는 우리 인간이 그것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 머물지 않고 바울은 더 심각하게 율법을 알면 알수록 내 안에 잠복에 있는 죄성을 충동질해서 결과적으로 더 죄를 많이 짓게 만든다고까지 했다(롬 7:9-11). 그러면 율법을 차라리 모르는 것이 더 낫다는 말인가?

바울이 우리에게 말하고자하는 요지는 율법의 무기력함이다. 율법은 내용 면에서 그 자체로 완전하지만 중요한 그것을 지킬 능력은 갖고 있지 않다는 말이다. 율법은 문자(letter)로 기록된 책일 뿐이다. 그래서 율법 아래 살아가는 삶과 복음 아래 살아가는 삶의 차이는 의지하는 대상이 다르다. 율법은 죽은 문자를 바라보게 하고 복음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바라보게 한다. 율법은 그것을 지켜야 하는 나의 ‘의지’를 강조하지만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을 바라보는 ‘믿음’을 강조한다. 또 율법은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서 연구하고 공부하는 ‘지식’을 추구하게 하지만 복음은 사신 하나님과 관계 맺는데 필요한 겸손과 갈망하는 ‘마음의 태도’를 강조한다. 그래서 복음 아래에서 살아가면 우리 삶의 완전한 교과서로 주신 율법을 오히려 더 잘 지키며 살아가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도덕적으로나 종교적으로나 완전했던 바리새인보다 자신이 가진 많은 문제로 인해 감히 고개도 들지 못한 채 자기 가슴을 치며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부르짖는 세리를 예수께서는 더 의롭다고 하신 것이고(눅 18:9-14), 슬기롭고 지혜롭다는 사람들보다 어린아이처럼 의지하는 이들이 더 하나님과 그 아들을 더 잘 알게 된다고 말씀하신 것이었다(마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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