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EN MIND

“율법과 복음의 차이 1” – 이영주 목사

화요일과 목요일 이른 아침에 영국교회에서 하는 성경공부 모임에서 로마서 7장 7절-25절까지를 공부했다. ‘내가 원하는 선은 행하지 않고 원치 않는 악을 행하는도다. 아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15, 24)라고 탄식하는 이 구절은 우리의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런데 이 구절은 신학자간에 논쟁이 많은 구절 중에 하나다. 과연 이 구절은 바울이 예수를 믿기 전의 상태를 말하는 것인가 아니면 믿고 난 이후의 경험을 말하는 것인가? 경험적으로 우리도 이럴 때가 많기 때문에 이것은 예수 믿고 난 이후의 상황이라고 쉽게 생각한다. 더구나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한다’(22)고 고백하는 것을 보면 분명 믿는 사람으로 보여 진다.

하지만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 팔렸도다’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라는 고백은 그 전장인 6장과 그 이후의 8장에서 바울이 그리스도인의 삶으로 소개하는 내용과 상반된다. 예를 들면, ‘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하리니’(6:14)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어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6:22)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8:2) 등이다.

그러면 7장의 바울의 탄식은 그가 예수님을 믿기 전의 상태를 표현한 말이라고 봐야 하는가? 그런데 그렇게 보기에도 왠지 석연찮다. 우리의 경험에 빗대어서라기보다-왜냐하면 이 서신을 쓸 당시의 바울은 믿음이 약한 우리와 다르니까-본문 자체에서 주어를 ‘나’로 바꾼 것 말고는 분명 그 자신의 현재 상태를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25절에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한다는 현재 상황을 표현한 말에 이어서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는 동일한 고백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바울이 예수 믿기 전 상태를 고백하고 있다고 보아왔다. 그것이 로마서를 써내려가는 바울의 일관된 태도이기 때문이다. 그는 로마 교회에 자신이 전한 위대한 복음을 설명하기 위해서 이 서신을 썼다. 그래서 이방인이나 유대인이나 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의롭게 될 수 있고 거룩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담대히 선포했다. 그런데 갑자기 7장에 와서 ‘원하는 선은 행치 않고 원치 않는 악을 행한다’며 마치 예수를 믿어도 실제로는 죄에서 벗어나는 것이 만만찮다는 무슨 ‘양심선언’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하지만 7장 전체를 문맥에서 보면 바울의 진짜 의도를 알 수 있다. 바울은 율법과의 관계를 설명하면서 죽은 남편에서 벗어난 아내의 입장으로 설명한다(1-6). 그럼에도 불구하고 율법은 선하고 의롭고 거룩한 것이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것은 우리 안에 있는 죄를 부추겨서 결과적으로는 더 죄를 짓게 만든다고 말한다(7-12). 그렇게 보면 바울은 율법 아래에 머물면 죄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이어서 자기 고백으로 설명한 것이다. 이것은 믿든지 믿지 않든지 동일한 상황인 셈이다. 그 동안 이 본문을 가지고 믿는 사람이냐 믿지 않는 사람이냐에 집중하다보니까 해석하기 힘들었던 것이다. 바울의 진심은 믿지 않는 사람은 당연한 것이고 심지어 믿는 사람이라도 율법 아래 있고자 하면 결코 선한 삶을 살 수 없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율법은 무기력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죄에서 벗어날 수 있음을 다시금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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