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계속해서 우리의 연약함과 죄성에 대해서 성도들과 많이 나누고 있다. 우리가 매일 그리고 평생 직면하게 되는 엄연한 현실인 이 두 가지를 어떻게 handle하느냐는 우리 인생의 행불행과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왜곡된 인격과 신앙의 뿌리를 파고 들어가 보면 결국 이 두 가지를 잘 처리하지 못해서 생겼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연약과 죄성이란 문제는 내가 죽을 때까지 내 삶에 계속 있을 것이다. 그렇게 보면 우리의 삶이 왜 피곤하고 힘든지를 알 수 있다. 매일 ‘나는 왜 이럴까?’ ‘나는 왜 이렇게 밖에 하지 못할까?’ ‘왜 나는 저 사람처럼 저렇게 하지 못할까?’ ‘나는 왜 이렇게 인내가 부족하고 사랑이 없을까?’ 등의 고민으로 매일 괴로워하며 살아간다.
그런데 세상은 이런 고통에서 벗어나는 방법으로 ’I can do it’, 긍정적인 사고방식으로 마인드컨트롤하라고 말한다. 그런데 우리의 경험적으로 아는 것이지만 그렇게 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열등의식과 우월의식, 판단과 시기와 다툼 등이 끊이지 않는다.
놀랍게도 하나님께는 이 두 가지에 대한 확실한 대안을 갖고 계신다. 이것이 성경에 나와 있다. 이것은 거의 혁명에 가깝다. 정말 예수님을 믿는 것이 ‘기쁜 소식’ 복음이구나 하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그래서 이 복음을 온 세상에 전하는데 내 평생을 다 바쳐도 괜찮구나 하는 확신까지 갖게 되는 것이다.
나의 연약과 죄성을 다루는 바른 태도는 ‘아니야,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야. 나는 얼마든지 잘 할 수 있어!’라는 현실부정이 아니다. 도리어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야. 그리고 이 모습을 나는 앞으로 계속 확인하며 살아갈거야.’라고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세상의 가르침과 완전히 다르게 ‘너 있는 그 모습 그대로, 아무런 뭔가를 하지 않더라도 여전히 가치 있다’고 여겨주시는 그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해야 한다. 변명하지 말고 감추거나 포장하려고 하지 말고 진실하게 그분께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이런 태도는 그것들을 묵상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바꾸려고 들지 않아도 되니까 오히려 그것과 씨름하는 손을 놓고 시선을 떼는 과정이어야 한다. 나의 시선을 그 연약과 죄성을 아무렇지 않게 만들어주신 내 안에 거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에 두어야 한다. 연약과 죄는 그분께 나아가는 entrance와 그분을 만나는 meeting point로만 삼고, 거기서 온 맘으로 바라보아야 것은 내 안에 거하신 예수 그리스도, 내 위에 머물러 있는 그분 능력이어야 한다. 더 이상 자신의 연약과 죄성을 묵상하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