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EN MIND

연약함과 마음의 상처와 죄는 다르다.

바울은 자가 자신을 위해서는 연약 것들 외에는 자랑하지 않겠다고 했다(고후 12:5). 상처와 죄 짓는 상황을 자랑스럽게 생각할 리가 없다. 분명 연약함이라는 것이 내가 받은 마음의 상처나 자꾸 넘어지는 죄와는 다른 것이다. 자랑이 되어야 할 무엇이다.

사람이 상처를 받고 죄를 짓는 이유는 연약해서 그런 것은 맞다(롬 5:6). 그렇지만 그 상처는 치유될 수 있다. 때론 치유가 더딘 경우도 있는데 그건 내 안에 거짓된 사고방식이 깊이 뿌리박혀서 그렇다. 내 생각의 틀이 바뀌면 상처도 근본적으로 해결된다.

그래서 진리의 말씀, 성경을 통해서 그것을 알아가는 은혜가 계속 있어야 한다. 외모와 지적 능력을 행복의 기준으로 여기는 잘못된 생각에 사로잡혀 산다면 그것과 관련된 모든 상황에서 계속 상처를 받게 될 것이다. 외모와 지적 능력은 나의 행복과 아무 상관없다고 하는 진리를 자기 안에 세우기 전까지는 상처에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고집스럽게 진리보다 세상의 가르침을 더 붙들고 그것에 비위맞춰서 성형과 성적에 미쳐서 살아간다. 그렇게 해서 상처가 치유되는 듯하다가 또 다시 상처를 받는 일을 반복하는 것이다.

죄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내가 연약해서 죄를 짓지만 예수님을 믿은 후에는 상황이 달라졌다. 예수 믿기 전에는 성경의 가르침에 의하면 죄의 노예가 되어있었다. 죄가 미워서 착하게 살려고 하고 실제로 고행과 금욕적인 종교생활도 해 보지만 그래서 실제로 겉으로 보기에 어느 정도 성과도 있어 보이지만 성경은 여전히 노예상태, 근본이 바뀌지 않은 상태에서 겉만 착하게 흉내 내는 정도여서 죄에서 놓여진 자유의 몸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런데 예수를 믿으면 다르다. 완전히 죄에서 놓여진다(롬 6:6).

그렇다고 해서 예수 믿으면 하룻밤에 천사로 바뀐다는 말은 아니다. 적어도 죄의 노예상태에서 어쩔 수 없이 죄를 짓는 것과는 다르다는 말이다. 내가 No라고 거부하면 안 지을 수 있다. 이제 믿는 신자에게 죄는 선택의 문제이다. 내가 안 지으려고 하면 하나도 안 지을 수 있다(요일 3:9). 그렇지 않으면 나처럼 완전해지라는 하나님 말씀을 이해 못한다(마 4:48).

연약함은 그 말 그대로 연약함이다. 믿고 안 믿고를 떠나 사람으로서 누구나 겪는 고통이다. 특히 복음을 위해서 살아가도 이런 연약함은 똑같이 겪는다. 상처 주는 인간관계, 질병과 가난, 불확실한 미래로 인한 불안 등 그리스도인도 다 당면한다. 그런데 그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리스도가 함께 계시기 때문이다. 그분의 능력이 머물기 때문이다(고후 12:9~10). 그래서 예수님을 영접 한 후에 그분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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