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이번 주, 9월 18일 한국문화원에서 한국에서 오신 위안부할머니와 관련 단체 분들을 모시고 세미나와 전시로 이루어진 행사가 열린다. 이 행사를 조직하고 돕는 일을 하게 되면서 그 동안 하나님께서 보여주시고 배우게 하신 것을 함께 나누고 싶다.
작년 봄, 세 살짜리 아이엄마이자 학생으로 바쁘게 지내던 중에 우연히 위안부 문제를 다루는 한 박물관을 알게 되었고, 뭔가 독특한 소재가 될까 싶어 이 주제로 숙제를 하게 된 것이 위안부 문제를 깊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교과서에서 몇 줄로만 배웠던 위안부 문제는, 자세히 들여다볼수록 충격적이었다. 무관심이 이분들을 더 궁지에 몰았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이 주제로 컨퍼런스에서 발표도 하게 되고, 겨울에는 파리에서 열린 세미나에도 봉사자로 참여했다. 추운 파리의 날씨, 얇은 개량한복 한 벌만 입으시고 사람들 앞에 선 할머니의 모습은 작은 평범한 노인이었다. 이 경험들을 통해서, 하나님은 순차적으로 세상의 많은 문제들을 보면서도 너무나 무디었던 내 마음을 두드리고 만지신 게 아닐까 생각한다.
나 혼자서 어차피 해결할 수 없으니까 약간은 무관심했던 문제들. 위안부 문제는 나라 잃은 수많은 가난한 어린 여성들이 끌려가 모진 인권유린을 당했던 사건, 또 전쟁 후에도 피해자라고 나설 수도 없었던 이 세상의 가장 약한 자들의 문제를 대표한다. 이제 많은 분들이 세상을 떠나고 정부에 공식 등록된 분들 중 50여분만이 남으셨다. 하나님의 주권으로 기한이 정해진 이분들의 시간이 지나가고 나면 우리는 역사를 과연 어떻게 기억할까? 타협하게 될까? 지난 일이라고 잊자고 하게 될까? 실리를 찾아야 하고, 약자들의 희생은 어느 시대에나 있어왔다고, 우리는 그렇게 편안한 쪽으로 진실을 편집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가 세상을 사는 동안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런 문제들을 보도록 허락하시고, 이 문제들을 볼 때 우리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신다. 죄 많은 세상에서 무관심과 고통을 겪은 영혼들을 하나님께서 안타까워하며 아파하고 계심을 느끼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이들을 위로하고 작은 정의를 세워나갈 수 있는 손과 마음과 귀와 입을 이미 주신 것을 일깨워주신다.
이번 일은 봉사와 후원이라는 자재가 도착해야 비로소 하나씩 이루어져가는 집과 같았다. 계속 다음도움과 참여를 기다리는 “수동적인” 자세에서도, 하나님은 이 문제에 그분의 마음이 머무신다는 것을 더 알게 해주셨다. 어느 새 15분의 봉사자 분들이 모였고, 기꺼이 뒷바라지를 아끼지 않으시는 후원자분들을 보며, 주께 하듯 후히 드리는 마음이 구체화 된 모습들 또 보답을 바라지 않는 마음도 생생하게 보고 있다. 하나님께서 이미 계획하시고, 나와 도움 주시는 분들, 또 참석하실 많은 분들의 마음을 두드리고 계심을 확신할 수 있다.
이번 주 금요일 오전 11시, 한 사람에게라도 더 진실을 알리고 기억되기 위해 할머니와 인권운동가 분들은 기꺼이 지구 반 바퀴를 돌아오실 것이다. 더 많은 분들이 바쁜 와중에도 이 문제에 대해 주시는 마음을 가지고 오셔서 귀 기울여주시면 좋겠다. 또,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정하신 이 날을 위해 함께 기도해주셨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