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에서만 통용되는 언어들이 있는데, 그중에 하나가 ‘심방’(尋訪-찾을 심, 찾을 방)이다. 일반적인 말로 하면 ‘방문’이다. 방문은 가볍게 찾아가는 것도 포함되는 말이라서, 목회자가 성도의 집을 찾아가서 위로하고 돌보는 의미를 담지는 못해서 심방이라는 말을 대신 사용한다. 한때 젊은 목회자들 사이에 한국교회 안에서 심방무용론 비슷한 말들이 회자되었다. 교육목회, 제자훈련 식의 붐이 일면서 심방이 왠지 비효율적인 것 같고 대신 소그룹내지 학교 반 형태의 모임을 더 선호하게 되었다. 더구나 개인 프라이버시를 중요하게 여기고, 여성들의 사회참여비율이 높아지면서 집에 있는 시간이 많지 않다 보니 심방을 받는 것이 어려워진 면도 있다. 더구나 목사님이 집을 방문한다고 하면 집안 대청소(?)까지 해야 하니까 아무래도 신경이 많이 쓰이기 때문이다.
나는 한국에서 목회할 때 작은 개척교회에서부터 400-500명 되는 중형교회에서 주로 사역을 했기 때문에 심방을 많이 했다. 아주 오래된 교회는 목회자의 심방을 성도들이 많이 원했고 젊은 30대 젊은 목회자인데도 주의 종이라고, 마치 주님이 자기 집에 방문하는 것처럼 정성스럽게 대접해 주셨다. 이 심방을 통해서 교회에서 여럿이 있을 때 하지 못한 가정사를 자세히 듣게 되고, 그것이 연결이 되어서 목회자와 성도 간에 끈끈한 가족애가 형성되었다. 그래서 한 교회에서 오래 목회하신 목사님들은 성도들의 집에 있는 숟가락 젓가락 수까지 다 안다 할 정도로 혈육보다 더 찐한 예수의 피로 하나된 공동체가 교회였다.
예전 목사님들은 ‘심방목회’라고 할만큼 이것을 중요하게 여기셨다. 담임 목회자는 교회행정이나 행사 그리고 매일 있는 설교 준비 등으로 심방을 많이 할 수 없으니까 일주일 내내 성도들의 가정을 심방하는 것만 전담하는 여자 전도사님을 두었다. 설사 목회자가 부족한 것이 많아도 주중에 심방 여전도사님이 심방을 통해서 성도들을 도닥거리고, 가정의 여러 어려움을 듣고 함께 눈물 흘리며 기도하는 것으로 교회가 든든히 서 있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일 년에 봄 가을로 ‘대심방’이라고 해서 담임목사님이 모든 성도들의 가정을 방문하는 게 있는데, 그때에 심방 여전도사님은 하루에 7-8가정을 방문하는 스케줄을 짜고, 교구 장로님, 구역장(셀리더)과 전도회(또래 모임) 회장까지 동행한다. 이 시간에 가정의 모든 기도제목을 듣고 그것을 카드에 기록까지 해서 이후에도 기도를 하게 되고, 함께 갔던 분들도 더 가까워지는 시간이 된다. 이런 식으로 한국교회는 가족처럼 엮여지게 된 것이다.
이번 주에 저희 교회에서 등록하신 가정들과 교회에서 만난 결혼한 가정을 심방했다. 우리 성도들은 런던 동서남북에 흩어져 있다보니까 어떤 경우에는 한 번 심방을 가면 2시간 차로 가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도 그렇게 가서 우리 성도들의 지난 살아온 오랜 얘기에서부터 최근의 어려움과 고민, 기도제목을 들으면 절로 마음이 하나가 된다. 그 자리에서 나와 아내도 고민을 나누고, 때론 서로 의견이 다른 분열된 모습(?)까지 성도들 앞에 보여주는데 그것도 성도들과 목회자 가정이 가까워지는 데 필요하다 싶어서 서스럼없이 나누게 된다. 이렇게 심방하고 돌아오는 길이 참 기쁘고 감사한 마음이 많다. 우리 성도들을 많이 만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