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경쟁 속에 살아가야 하는 우리 세대 중 청춘을 한껏 만끽할 수 있는 이들은 과연 몇이나 될까? 최승자 시인은 <내 청춘의 영원한>이라는 시에서 청춘을 괴로움, 외로움 그리고 그리움이라는 세 꼭짓점을 가진 ‘청춘의 영원한 트라이앵글’이라 묘사했다. 돌이켜보면 나 역시 그 트라이앵글에 갇혀 그다지 아름답지만은 않은 20대 초반의 삶을 지나온 듯하다.
유난히 길고 힘든 입시를 끝내고 난 후 마음이 너무 지쳐버린 나는 하나님을 밀어내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그리고 그 공허한 자리를 신앙이 아닌 이성과 지식으로 채우고자 했다. 그래서 대학에 입학한 이후로 학교 공부에만 열중했고, 학업적으로는 크고 작은 성취들을 이룰 수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채워지지 않는 마음의 갈급함은 날로 더해만 갔다. 그렇게 방황과 고뇌의 시간을 보내던 중 런던에서 교환학생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런던은 내가 상상하던 도시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처음 도착했을 때, 나는 마치 ‘회탁의 거리'(회색의 탁한 거리)에 발을 내디딘 것만 같았다. 그나마 나를 지탱해주던 가족들마저 없는 상황에서 나는 더욱 깊은 외로움과 공허함에 침잠되어만 갔다. 그렇게 어둠에 잠식되어 갈 때쯤 꿈이 있는 교회에 예배를 드리러 가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수요예배에 가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 예배에 참석하게 되었다. 그런데 예배를 마무리하고 개인 기도를 하려고 하는 순간, 갑자기 기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하나님께 무엇을 아뢰어야 하는지 아무것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철저한 단절이었다. 그 순간 내가 그동안 얼마나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었는지를 처절히 깨달은 나는 기도 시간 내내 하나님만을 부르짖으며 ‘다시 제 입술을 열어주소서’라는 기도만 반복해서 드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날 이후 나에게는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타성에 젖은 신앙생활만 하던 내가 예배를 간절히 사모하기 시작했고, 일상 속에서도 매일 하나님을 찾고자 하는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나는 이 사건을 내가 쌓았던 마음의 벽이 무너지는 순간으로 기억한다.
이후에도 하나님은 끊임없이 내 마음의 문을 두드리셨다. 셀모임, 예배, 각종 행사를 통해 주님은 나에게 계속해서 다가오셨고 나는 마침내 끈질긴 그분의 사랑 앞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사경회 첫날밤, 내 입술에서는 ‘내 모든 것을 주님께 내어드리오니 주님 받아주시옵소서’라는 눈물의 기도가 터져 나왔다. 단단하게 나를 가두었던 ‘괴로움, 외로움, 그리움’의 굴레에서 마침내 해방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나는 인생에서 처음으로 온전한 자유함을 느낄 수 있었다.
감사하게도 드디어 신앙의 사춘기를 끝내고 신앙적 정체성을 확립했지만, 아직도 완전히 옛사람의 모습을 벗어버리지 못하는 내 모습을 발견할 때가 있다. 그렇지만 예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그 부족한 모습도 나의 일부라는 것, 그리고 궁극의 온전함은 오직 하나님 안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나에게 하나님은 앞으로는 나 혼자만의 신앙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저마다 다른 모양으로 모난 이들이 모여 병들어가고 있는 한국 사회에 돌아가 그분의 사랑을 전파하라는 새로운 비전을 심어주셨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기도한다. 나의 최선이 이 땅에 생명을 흘려보내는 통로가 되길. 그래서 이 땅의 모든 이들이 주님 안에서 가장 참된 자유와 평안을 누릴 수 있게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