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mnos Church Planting School에 다닌 지 3주째가 되어간다. 거기서 새로운 내용을 배운다기보다 거기서 새롭게 얻는 ‘뜨거운 마음’이 있다. 앞으로 내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우리 교회가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 지 여러 가지 새로운 생각들이 자꾸 떠오른다. 육의 생각은 사망이지만 성령이 주는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라고 했는데 성령께서 주시는 생각이 내 머리에 과부하 될 정도로 너무 많이 부어지고 있다. 하나님께서 나와 우리교회에 너무 많은 기대를 갖고 계시다는 생각이 더 많이 드는 요즘이다.
그렇게 오랫동안 성경을 보고 또 가르치고 설교했지만 성경의 가르침이 새롭게 다가온다. 그 속에 들어가 있으면 그 위치와 상태를 잘 모르지만 그 속에서 나와서 멀찌감치 밖에서 쳐다보면 내가 어느 위치에 있었는지 비로소 알게 되듯이, 다시 예수님의 가르침과 사도들의 가르침을 보니 우리의 신앙이 그것에 비해서 많이 이탈되어 있다는 생각을 한다. 다들 그렇게 사니까 그것이 정상처럼 여겨지게 된 것이다. 눈이 하나인 사람들만 사는 곳에 두 눈을 가진 사람이 들어가면 이상하게 취급당하는 그런 기분이랄까?
교회를 다니면 너무나 많이 듣는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복음, 은혜 이런 말들이 단어로만 나열되고 있지 않나 싶다. 바울 사도의 고백처럼, 그렇게 박식하고 대단한 사회적 입지를 가진 그도 예수님을 믿고 보니 이전에 내게 유익하던 모든 것은 그 예수님을 아는 것에 비하면 배설물에 지나지 않고, 나는 오직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힌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않기로 작정했다고 말할 만큼 예수님을 믿는 것이 정말 대단한 일이 되어야 옳다.
하나님께서 인간이 되어오셨고, 그분이 오셔서 우리를 사랑해서 대신 죽어주셨다는 이 엄연한 사실은 TV 메인뉴스에 매일 그리고 영원히 보도되어야 할 쇼킹한 사건이 아닌가? 그리고 이 사건이 개인과 인류에게 가져올 변화와 축복은 이루 말로 표현하지 못할 정도로 대단한 것이 아닌가? 이 복음을 위해서 사는 삶이 아무리 힘들어도 가장 영광스러운 것이다.
그래서 우리교회 성도들을 생각하면서 이런 꿈을 꿔본다. 어느 지역에 이사 가면 1년 안에 그 일대 모든 가정에 복음을 전하고, 새로 회사에 입사하면 1년 내에 사장을 비롯해서 그 직장 모든 동료에게 복음을 전하고, 학교에 입학하면 1년 내에 교수를 비롯해서 같은 과 모든 학우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꿈 말이다.
감옥에 갇혀도 그곳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했던 바울처럼 내가 앞으로 무슨 일을 하고 내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느냐는 그렇게 문제가 되지 않을 정도로 모든 상황을 복음을 전하는 기회로 삼는 성도들로 세워지는 꿈 말이다. 꼭 그런 교회가 될 것이다. 이 꿈을 위해서 내가 먼저 복음에 숙성된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