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EN MIND

“나의 간절한 부르짖음” – 이영주 목사

지난 10월 중순에 터키 성지순례를 한 주간 다녀왔다. 오랫동안 고집스럽게도 ‘지금 여기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이 중요하지 과거 역사하셨던 현장이 그렇게 중요하나 싶어서 성지순례에 많은 욕심을 내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 내가 존경하는 바울 사도의 선교지를 둘러본다고 하고, 가이드가 성지순례 전문가로 오랫동안 활동해 오신 교수님이어서 참여하게 되었다.

이번에 바울이 선교했던 여러 지역을 직접 방문하면서 느낀 것은 어떻게 한 사람이 그렇게 놀라운 사역을 할 수 있었는가 하는 것이었다. 일정 중에 바울이 1차 선교지역이었던 비시디아 안디옥과 이고니온을 방문한 날이 있었는데, 차로 두 시간 거리였다. 당시의 교통수단을 이용했다 치더라도 그렇 먼 거리를, 한두 개 도시도 아니고 여러 도시들을 다니며 복음을 전해서 수많은 교회를 세워졌다는 것이 놀라웠다.

더구나 사도행전이나 바울이 쓴 서신들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해서 당시의 사람들이 미련하게 여겼고 심지어 생명이 위태로우리만치 반대가 심한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1, 2, 3차 선교를 끝내면서 ‘이제는 이 지방에서 일할 곳이 없어서 서바나로 가려고 한다’고 할 정도로 엄청난 열매를 거뒀다(롬 15:23). 어떻게 이것이 가능했을까? 바울이니까, 그는 사도니까 가능했다고 하기에는 뭔가 설명이 부족했다. 성지순례 내내 단지 바울의 지난 행적을 떠올리면서 감명을 받는 것으로는 부족했다. 오히려 왜 지금 나는 그렇게 살지 못하는 걸까? 내게 무엇이 부족한 것일까? 나를 심각하게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다.

과거보다 지금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더 보기 원하는 나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바울의 여러 서신에서 찾았다. 그것은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이었다. 그가 1차 선교여행을 마치고 쓴 갈라디아서에서 ‘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이 복음을 듣고 믿었을 때 있었다(갈 3:5)고 했다. 2차 선교지였던 데살로니가에 쓴 편지에서는 ‘우리 복음이 말로만이 아니라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전해졌다’(살전 1:5)고 했고, 고린도에 쓴 편지에서도 ‘내 말과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이 아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행해졌다’(고전 2:4)고 했다. 3차 선교지였던 에베소에서의 사역은 ‘성령을 받게 하는 것’으로 시작했다(행 19:6).

이 성령의 나타나심을 고린도전서 12장에서는 성령이 각 사람에게 나눠주시는 은사와 연결시키고 있다(고전 12:7-11). 결국 바울은 성령의 은사가 사역 가운데 분명히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반대가 심한 상황에서도 많은 교회를 세월 수 있었던 것이었다. 실제로 지금도 전 세계적으로 복음증거를 통해서 가장 많은 교회를 세우고 있는 교단은 이 은사를 강조하는 오순절 교단이다. 은사가 전부는 아니지만 중요한 것은 분명하다. 전도와 선교완성에 관심이 많고 그것을 위해서 내 삶을 다 드리고 싶은 나로선 그 성령의 나타나심을 자연히 사모하지 않을 수 없다.

성령의 이끌림으로 성경을 신학적으로 바르게 연구해서 지금의 상황에 예언적으로 선포하는 것은 어느 정도 익숙해졌지만, 성령께서 나타나셔서 능력으로 그 말씀을 증거해 주시는 것은 아직 경험적으로 부족하다. “주님, 제 삶과 사역에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이 있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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