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90% 이상 코로나 바이러스 예방 효과가 있는 백신이 개발되었다는 뉴스를 들었다. 아마도 내년에 확실히 코로나가 종식될 것 같다. 그래도 끝이 보이니까 마음이 놓인다. 이런 반가운 소식을 듣고 묘한 기분이 들었다. 서운한 마음, 조급한 마음이 교차했다.
그동안 이 바이러스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당해왔는데 이런 상황이 곧 끝나간다고 서운해 하다니 도대체 무슨 뚱딴지같은 말인가 싶을 거다. 오히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고통을 오랜 기간 그것도 전 세계 사람들이 겪었기 때문에 아무런 교훈도 얻지 못한채 그냥 정상으로 돌아간다고 좋아하기엔 너무 억울하고 어리석은 것 같아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담과 하와의 범죄로 인해서 이 세상에 죄가 들어왔고, 그 이후로 모든 게 망가졌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구원자로 보내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하심으로 이 죄의 문제를 해결하셨다. 그렇게 해서 우리에게 주어진 그 구원은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기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는 정도가 아니었다. 로마서 5장에 첫 아담과 둘째 아담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대조하면서 바울은 ‘더욱 넘치는 은혜’가 주어졌다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백신 개발에 대한 반가운 소식을 들으면서 이번의 긴 팬데믹 상황속에서 무엇을 배웠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분명 목회나 내 개인의 삶에 있어서 무엇이 부족했고, 앞으로 어떤 것을 준비하고 세워가야 하는지를 깨닫게 된 것들이 많이 있었다. 하지만 아직 그것을 온전하게 이뤘다고 할 정도가 아니어서 이 상황이 끝나기 전에 그것을 만들어야 한다는 조급한 마음이 들었다. 방향성에 대해서는 주께서 많이 가르쳐주셨는데, 이제 그것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내 삶과 사역에 적용해 가야 할지는 더 지혜를 구해야 할 것 같다. 안 그러면 땅에 묻혀 있는 보물처럼 마음의 교훈에 머물고 그것이 실제로 드러나지 않고 끝나버릴 것 같아서 아쉬울 것 같다.
살다 보면 나의 잘못된 선택 때문이든, 아니면 이번의 이 팬데믹처럼 나와 상관 없이 예기치 않게 내 삶에 들어닥치는 고통을 많이 만날 수 있다. 이런 고통은 우리의 가까운 친구처럼 받아들이며 살아야 한다는 헨리 나우웬의 말처럼 어려운 순간은 평생에 걸쳐서 우리의 삶에 찾아온다. 그렇기 때문에 힘든 순간을 만날 때마다 낯선 일처럼 그것에 괴로워하면서 어서 그 상황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리는 것은 너무 안일한 태도이다. 어차피 삶은 수고와 슬픔으로 점철된 것이어서 그것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도리어 그것을 나를 발전시키고 성장시키는 재료로 삼아야 한다. 실제로 하나님은 나를 온전케 하는 데 고난을 가장 요긴한 도구로 활용하시는 분이시다.
어둠의 순간을 두려움과 염려와 원망과 한숨으로 보낸다면 그건 고통의 시간에 지나지 않지만, 그것을 통해서 새로운 것을 배워서 자신을 더욱 성숙시켜 간다면 그것은 연단의 시간이 될 것이다. 우리는 남은 팬데믹의 상황을 고통이 아닌 연단의 시간으로 반드시 승화시켜야 한다.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롬 5: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