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EN MIND

“기도, 그 영광에로의 초대” – 이영주 목사

요즘 절박하게 기도해야 할 일들이 많다. 여기저기서 기도해야 할 사람이 보이고 실제로 요청도 많이 받는다. 다 하나같이 사람이 애쓰고 노력해서 될 일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정말 긍휼을 베풀어주셔야 할 정도로 절박한 것들이다. 그런데 나의 기도가 그것을 못 따라가는 것 같다.

나는 내 필요를 놓고 하나님께 간절히 구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다. 이미 내게 주신 것들에 감사해서 그런 것도 있지만 혼자 자라다 보니 부모에게 떼를 써서 받아본 경험이 없어서 그게 어색한 것일까? 아니면 하나밖에 없는 독생자까지 아끼지 않고 날 위해 내어주신 분이 뭘 더 아까워하시겠느냐 하는 믿음이 너무나 분명해서일까?

그렇다고 하나님의 주권 운운하면서 ‘모든 것을 그분이 뜻대로 다 알아서 하실 거야’라고 생각해서도 아니다. 그건 믿음이기보다 개인적인 친밀함이 없는 무관심에 가까운 것이다. 나는 내 마음에 있는 사사로운 감정까지도 그분께 말씀드릴 정도로 모든 일에 기도한다. 하지만 필요를 놓고 기도할 때는 간절하게 기도하기는 하지만 오래 하는 건 잘 안 된다.

그러나 장시간 기도해야 할 이유는 분명히 있다. 다른 사람을 위한 기도, 소위 중보기도는 그 사람이 부탁한 기도제목을 액면 그대로 하나님께 전달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소망하는 중보기도는 그 이슈를 놓고 일단 하나님께 그 원하는 바를 말씀을 드리지만 더 중요한 건 그분의 의중을 듣는 것이다. “그 사람도 이렇게 원하고 저도 그렇게 되기를 원합니다만 주님은 어떠신지요?” 그래서 누군가를 위해서 기도한다는 건 그와 내가 미처 알지 못하는 그분의 사랑과 지혜와 마음을 알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중보기도는 단순한 report가 아니라 그 사랑하는 사람을 사이에 두고 어떻게 도와줄지를 심도깊게 의논하는 시간이다. 기도는 하나님의 통치에 참여하는 것이고, 그분의 놀라운 계획을 엿듣는 시간과 같다. 그래서 이런 기도는 당연히 길 수밖에 없다.

이렇게 보면, 기도는 놀라운 신비이다. 하나님의 일하심을 가장 근접하게 경험하는 축복의 자리이다. 기도노트에 적혀 있는 기도제목들을 그저 나열하듯이 읽어내려가기보다 그 하나하나의 제목을 하나님께 아뢰면서 그분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영광을 누리는 것이다. 그래서 요즘같이 기도할 일이 많아지고 그것이 마음에 큰 짐으로 다가오는 것을 보며 나로 하여금 예전보다 더 기도의 자리에 참여하라고 주께서 부르시는 것 같다.

요한복음 15장 포도나무와 그 가지 비유를 보면, 전반부는 주님과의 관계에 헌신하라는 말씀이고, 후반부는 새 계명인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으로 이뤄져 있다. 그런데 그 둘의 관계가 각각 잘 이뤄졌을 때 나타나는 현상은 둘 다 놀라운 기도의 응답으로 결론짓는다.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7),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16)

결국 주님과의 관계, 형제간의 관계가 다 완전해질 때 그것이 능력 있는 기도생활로 드러난다는 말이다. 그렇게 보면 그리스도인의 삶의 정상은 기도에 있는 셈이다. 주님처럼 수시로 한적한 곳을 자주 찾아가서 기도하도록 하자. 기도가 거룩한 습관이 되게 만들자. 우리 같이 그렇게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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