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EN MIND

“교회를 따라 움직여야 한다.” – 이영주 목사

런던에서 스코틀랜드로 가는 방법은 자가용, 기차, 비행기 등 다양하다. 목적지가 같아도 가는 방법이 다르면 결국 함께 하지 못한다. 우리가 교회생활을 할 때 서로 하나되지 못하는 이유는 대부분 목적지보다 그 과정이 달라서 그렇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기 위해! 이 땅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이 동일한 목적지를 향해 가더라도 그 교통수단은 다를 수 있다. 예를 들면 A교회는 하나님께서 거기에 이르는 중요한 교통수단(?)으로 선교로 부르셨고, B라는 교회는 다음 세대 교육으로 부르셨다고 가정해보자. 그런데 만일 A라는 교회에 출석하는 성도가 B교회에 주신 부름인 다음 세대 교육을 주요한 교통수단으로 주장하면 그 교회를 나뉘게 만드는 것이다.

물론 교회는 오케스트라처럼 다양한 요소가 아우러져서 건강한 공동체가 될 수 있다. 그렇지만 교회마다 위치한 지역과 시대와 그 구성원 따라 특별한 부르심이 있다. 그래서 다른 교회를 벤치마케팅해서 우리교회도 이렇게 가야 한다거나, 내가 다니던 이전 교회는 이렇지 않았다고 하기 시작하면 다 그 주장이 성경적이지만 결과적으로 교회를 나뉘게 만드는 것이다. 개인의 부르심이 다르듯이 교회의 부르심도 다 다를 수 있기 때문에 교회마다 성령께서 하시는 말씀(감동)을 들어야 한다.

가끔 논란이 되는 주일성수나 십일조와 같은 부분도 성경구절을 인용하면서 이것이 구약의 율법이냐, 신약에도 계속 이어지느냐를 놓고 갑론을박이 있다. 그런데 이 주제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제일 중요한 것은 ‘교회’라는 공동체의 결정이다. 어떤 식으로든 헌금은 해야 할 것이고, 또 고립되지 않고 함께 주님을 섬기는 것이 중요하다는 성경의 확실한 가르침에 근거해서, 내가 속한 교회가 십일조라는 구약의 제도를 현대 헌금생활에 그대로 적용하기로 결정했다면, 그리고 일요일이 가장 다 모일 수 있는 적절한 날이어서 예배하기로 결정했으면 따라야 하는 것이다.

교회가 움직일 때, 즉 위의 비유대로 만일 기차로 스코틀랜드로 가기로 결정했으면 당연히 함께 기차를 타야 옳다. 그래서 우리가 교회생활을 할 때 비성경적인 결정이 아닌 이상 교회가 무슨 결정을 내리면 내 몸과 마음을 교회와 같이 가려고 해야 한다. 아무리 내 감정과 견해와 달라도 그렇게 하는 게 나를 위해서라도 옳다.

아브라함은 삼촌으로 더 좋은 땅을 택하고 싶었지만 혈육과 다투지 않기 위해서 조카 롯에게 먼저 좋은 땅을 양보했다. 모세도 인간적으로 생각해 보면 바로의 공주의 아들로 있는 것을 더 원할 수 있었지만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에 힘든 광야의 길을 들어섰다.

우리 꿈이있는교회는 6월부터 점차적으로 오프라인 예배로 전환하려고 한다. 나는 이번에도 우리 성도들이 교회가 가는 그 뱡향으로 함께 나아갈 것이라고 믿는다. 어떤 이는 저 멀리 앞다투어 달려가는 이도 있는 반면, 다른 이들은 약간 조심스러워서 뒤쪽에서 따라올 수는 있어도, 분명한 건 같은 교통수단에 다 올라타서 가야 한다. 교회가 주님의 몸이라는 그 성경의 말씀이 틀림없다면 교회를 따라가야 주님을 따라갈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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