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데믹을 거치면서 유난히 예수님의 재림시기와 징조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과 승천하시기 전에 이것이 주된 관심사였다.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마 24:3) “주께서 이스라엘을 회복하심이 이때이니이까?”(행 1:6)
이것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을 보면, 시기와 때에 대해서는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기 때문에(마 24:36),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때에 오신다고 하셨다(마 24:44). 그러니 그것은 너희가 알 바가 아니라고 하셨다(행 1:7). 그런데도 집요하게 그때를 정확히는 몰라도 예측은 가능하며 그것이 그분의 오심을 준비하는 데 도움 된다는 식으로 물타기를 한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보면, 그런 태도가 더 위험하다고 경고하셨다. 재림과 관련해서 주께서 하신 권면은 크게 두 가지이다. ‘미혹 당하지 말라’와 ‘깨어있으라’이다. 여기서 미혹당할 수 있는 사람이 세상을 사랑해서 영적 수면 상태에 빠져있는 자가 아니라 재림시기와 징조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사람들이라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시를 추측하는 데 징조를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지진, 기근, 전쟁 등은 재림이 가까워진 증거가 아니라 시작에 불과하니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다(‘아직 끝은 아니니라~이 모든 것은 재난의 시작이라’ 마 24:6-8). 물론 재림시기와 관련해서 예루살렘이 포위되는 사건이나, 번개가 동쪽에서 서쪽까지 번쩍이는 것, 시체들이 있는 곳에 모여드는 독수리 떼와 무화과나무 비유를 말씀하셨는데 그 의도는 모든 사람이 알 수 있는 방식으로 당신이 임할 것이라는 뜻이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 예수님의 의도와는 반대로 다시금 그 말씀을 가지고 그 재림시기를 예측하는데 사용하고 있다. 주님도 이것을 아셨는지 재림과 관련된 당신의 긴 가르침을 혹시 오해할지 몰라서 이어가는 열 처녀 비유에서 슬기로운 처녀들도 신랑이 언제 올 지 몰라 졸고 있었다고 하셨고 “그런즉 깨어있으라 너희는 그날과 그때를 알지 못하느니라”(마 25:13)고 결론을 내리셨다.
바울이 2차 전도시에 복음을 전해서 세워진 데살로니교회가 이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에 대해서 관심이 많았다. 바울은 그 두려워 성도들에게 그렇게 하면 미혹을 당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살후 2:1-3). 적그리스도의 등장에 대해서 말하는데 그 의도는 재림은 공개적으로 알려지는 것이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구절을 가지고 그 시기를 계산하고 있다.
재림과 관련해서 예수님이나 사도들이 강조한 것은 분명하다. 복음이 땅끝까지 이르게 하라는 것이다(마 24:14, 행 1:8). 데살로니가 교회를 향해서도 미혹당하지 않는 유일한 길은 그 재림시기를 분석하는 데 있지 않고 진리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데 있다고 하셨다(살후 2:9-12).
이렇게 그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 자체에 관심을 오로지 둘 때 비로소 깨어있는 삶을 시작할 수 있다. 시기와 징조에 대한 지나친 관심은 현재 내 삶에서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섬기는 것보다 그 징조가 이뤄지는 현장에 관심을 더 쏟게 만들고 결과적으로 두려움 속에 살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