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면서 가장 큰 발견은 ‘내 아내가 괜찮구나.’하는 것이다. 한국 나이로 23세에 나와 결혼해서 20년 가까이를 아이 키우다 세월을 다 보냈다. 이것도 벅찬데 사모라는 자리매김하기가 쉽지 않는 그 그늘진 자리에서 또 다른 짐을 지고서 참 힘겹게 살아온 것을 이제야 본다. 그 흔한 성경공부 하나 제대로 해 볼 세도 없이 직장만 다니고 있던 그 시절 ‘나는 아내를 원하지 사모를 원치 않아요.’ 그 한 마디에 용기를 내어 결혼한 그녀는 ‘이것이 사모의 자리였다면 당신과 결혼하지 않았을 거예요.’라고 원망 아닌 자신을 이해해 달라고 직설화법으로 말하곤 한다. 도장에서 기본기부터 천천히 배워서 익힌 싸움이 아니라 처음부터 현장에 바로 투입되어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본인도 미처 몰랐던 그 수많은 싸움들을 혼자 받아내야 했다. 그래서 그런지 상처는 컸지만 고통을 통해서 그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는 진주처럼 많은 부분에서 신앙의 정식교육을 받아온 나보다 더 지혜롭고 강직해 졌다.
이제는 나도 아내의 말을 귀기울여듣는 철든 남편이 되어간다. ‘내가 옛날부터 그렇게 말했잖아요. 그 때 그렇게 듣지 않으시더니…’ 뒤늦게 깨달은거라 말하면 곧잘 하는 말이다. 내가 큰 숲을 잘 보고 나아갈 방향을 잘 잡는다면 아내는 나무 한 그루 한 그루를 잘 살피고 분별해 내는데 탁월하다. 그래서 내가 큰 방향에 대해서는 한 번 결정하면 타협하지 않고 우직하게 나아가지만 세세한 부분에 있어서는 어느 것이 옳은지 한참을 생각할 정도로 신중하다. 그렇지만 아내는 상황을 보는 즉시로 ‘이것이 옳다. 저 것이 옳다.’ 분별해 낸다. 그러다보니 ‘저건 아닌데’ 싶어서 참견이라도 하면 이전의 나처럼 상대방이 무시해 버리니까 스스로 힘들어 했다. 하지만 세월이 좋은 스승이 되어서 이제는 틀린 줄 알지만 상대방이 충고해도 듣지 않을 것 같으면 그냥 두어서 실수해서 깨달을 때까지 기다리는 여유도 배운 것 같다.
이번 주에 그렇게 한 번 가보고 싶어 했던 한국을 6년 만에 간다. 딸들을 두고 가야하고, 가서도 시아버지 병문안으로 가는 거라 마음 편히 쉴 형편도 못 되니까 처음에는 좋아했다가 시무룩해졌다. 하지만 한 가지 거는 소망은 이런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 가장 최선의 일정으로 인도해 주시리라 믿는다. 우리 성도들이 우리 없는 동안 교회를 잘 지켜주고 생각날 때마다 기도해 주셨으면 좋겠다. 너무 많이 우리 가족에 대해서 오픈하지 말라는 아내의 말을 듣지 않아서 오늘도 또 한 소리 들을지 모르겠다. 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