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 전쯤이었다. “목사님, 혹시 윔블던 영어셀을 맡아서 섬겨주실 수 있을까요?” 이영주 목사님의 요청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정말 자신이 없었다. (이미 같은 시간대에 윔블던 새가족반도 맡고 있었다) 그래도 오래 생각하지 않고 곧바로 “네, 알겠습니다”라고 답했다.

정현석 목사님이 비자 갱신과 가족 방문으로 한국에 가시게 되었을 때도 비슷했다. 딱 3주간 임시로 목사님이 맡고 계시던 중고등부와 1부 예배 찬양을 대신하게 되었다. 어느새 그 3주가 두 달이 되어가고 있지만, 그 시간들이 내게는 예상치 못한 선물이 되고 있다.

‘임시 담당자’가 된다는 것이 유쾌한 일만은 아닐 수 있다. 일의 양도 늘어나지만, 내가 처음부터 자원하고 선택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하나님께서 나를 그런 자리에 꾸준히 세워 오신 것을 발견한다. 꿈이 있는 교회에 오게 된 것도 그랬다. 사역자 이동으로 생길 수 있는 ‘공백’이 교회에 어떤 모양으로든 불편을 끼치지 않기를 바랐고, 그 한 마음으로 최선을 다했다. 사람은 가도 하나님의 사역은 중단 없이 계속 되어야 하니까. 그렇게 시작된 나의 사역이 지금도 누군가의 빈자리를 채우는 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열여덟 살 무렵, 하나님께 드렸던 기도가 나는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주님, 제가 아니라, 주님이 원하시고 바라시는 곳으로 저를 보내 주세요. 무슨 일이든 맡겨만 주세요. 순종할게요. 주님이 그런 저를 보시며 기뻐하셨으면 좋겠어요.” 그러고 보면, 오래 전에 드렸던 그 기도에 주님이 아주 성실하게 응답하고 계신 셈이다.

윔블던 영어셀은 임시로 시작 했지만, 이제 정식 담당자가 되었다. 든든한 큰 형님 같은 Damir 부부, 귀여운 막내 같은 Jonathan 부부, 그 사이를 절묘한 밸런스와 재치로 연결해 주는 Elliot 부부. 이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나의 마음을 채운다. 두달째 임시로 맡고 있는 중고등부 아이들과의 시간도 그렇다. 센트럴 중고등부에 참석하는 Iftu, Faith, Manuella, Annina… 에티오피아에서 온 네 명의 친구들과 예배할 때도 하나님이 주시는 감동이 있다. 내가 영어를 잘해서도, 청소년 사역에 자신 있어서도 아니다. 그저 그 자리에 주님이 나를 보내셨고, 그 일에 내가 순종으로 참여하고 있다는 그 사실만으로, 섬김 속에 누리는 은혜가 큰 것이다.

‘임시’라는 말에는 묘한 구석이 있다. 마치 ‘진짜’가 아닌 ‘가짜’, ‘본격적’이 아닌 ‘잠깐’의 뉘앙스를 담고 있으니까. 하지만 내게 ‘임시’는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그것은 하나님 말씀에 ‘즉시로’ 순종하는 태도를 훈련할 더 없이 좋은 기회임과 동시에, 하나님의 때와 계획에 나를 온전히 맡기는 예배와 같다. 내 작은 섬김이 주님의 교회를 빈틈없이 세워가는 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기도한다.

나의 작은 섬김도 언젠가는 더 적합한 누군가가 그 자리를 맡게 될 것이다. 하지만 바로 지금 이 순간, 하나님께서 나를 그 자리에 세워주셨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주님의 몸 된 교회가 빈틈없이 든든하게 서가는 일에, 잠시나마 그 공백을 메우는 역할을 감당할 수 있다는 것. 이보다 더 큰 은혜와 특권이 또 있을까.

오늘도 나는 감사한 마음으로 임시 담당자의 자리에 선다. 그것이 주님께서 오늘 내게 허락하신 가장 아름다운 사명임을 믿으며.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눅 17: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