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화요일 하루 종일 감정적으로 대개 예민했다. 가장 주도적인 감정은 ‘슬픔’이었다. 불안해하고 당황하고 분노하는 감정이 자연스러울텐데 나는 개인적으로 그냥 슬펐다. 한때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계기로 온 국민이 정치에 몰입하게 되었을 때 나도 그것에 빠져든 적도 있었지만 정죄와 분열의 소용돌이속에 빠져들고, 뭔가에 쒸인 듯이 이성보다 진영논리에 사로잡히는 것 같고, 심지어 예수를 믿어도 정치 견해가 다르면 등을 돌리는 것을 보면서 이것은 아니다 싶었다.
더구나 예수님이 살던 그 시대야 말로 로마 식민지 하에서 수많은 색깔을 가진 정치그룹들이 많았지만, 예수님은 세상에 ‘하나님 나라’라는 새로운 정치를 선보였고, 그 이념 하에 도무지 하나 될 수 없게 보인 그룹들이 녹아지는 것을 보면서 목사인 나는 누구보다 그 이상적인 정치를 이해하고 그것을 따르고 선포하기로 마음을 정리했었다. 복음은 ‘예수 믿으면 저 눈물 고통 없는 좋은 세상에 간다’고 하는 일차원적이고 종교적인 영역에서나 통하는 내용이 아니라 세상과 우리의 삶을 통째로 바꾸어놓을 수 있는 가장 완전하고 이상적인 이념을 가지고 있다는 확신을 가졌기 때문이다.
로마 시민권자들이 주로 살고 있던 빌립보에 있는 교회에 바울이 편지를 쓸 때에도 ‘로마 시민권자라는 프라이드보다 하나님 나라 시민이라는 것에 더 긍지를 갖고 그것에 합당한 시민생활을 하라’고 권면했는데, 내가 그리고 우리 성도들이 그 하나님 나라의 이상과 그것에 합당한 가치를 가지고 세상을, 그것이 정치든 경제든 문화든 바라보는 눈을 갖기를 바랬다. 그런데 난데없이 비상게엄령이 선포되면서 컴다운하며 지내던 선량한 국민을 들끓게 만들어서 너무 속상했다.
영국에 총신신대원 출신 목사님의 동문 카톡창이 있다. 한 목사님이 BBC 방송에 나온 비상게엄령과 관련된 뉴스 영상을 올리며 기도해 달라는 메시지가 올라왔다. 기도하겠다는 댓글이 올라오는 것은 자연스런 일인데, 이어서 평소 대통령에 불만이 많은 한 목사님의 험한 말이 올라오고, 다른 목사님의 비상게엄령과 관련된 정보들이 뒤따랐다. 그러자 평소 전혀 글을 올리지 않던 한 목사님이 정치적인 견해는 다양하니 여기서는 동문들의 소식과 동문회 광고만 올리고 하나님께서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시도록 기도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싶다는 글을 올렸다. 그러자 이 말에 대한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개개의 말에 대해서 무엇이 합당한가를 떠나서 같은 신대원을 나와서 이 외로운 영국 땅에서 저마다 열심히 사역하는 동역자 간에도 이렇게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이 그냥 슬펐다. “세금을 가이사 로마황제에게 바치는 것이 옳습니까? 옳지 않습니까?”와 같은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을 예수님께 던졌다. “시장에서 파는 우상 제단에 바쳐진 고기를 먹어야 합니까? 말아야 합니까?” 교회 내 이방인과 유대인들의 다른 견해에 대해서 바울은 답을 해 줘야 했다.
어느 정치 진영에도 속하지 않으셨고, 그 질문에 대한 직접적인 답보다 하나님 나라와 몸된 교회의 하나됨을 우선으로 한 대답을 하셨다. 정치인이 아닌 국민의 한 사람으로 내가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가장 적극적인 일은 투표이다. 그보다 더 강한 액션은 기도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