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내가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잉과응보적인 시각이다. 성경에서 심은대로 거둔다는 말처럼 분명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자유의지를 주셨고, 그래서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하느냐에 따라서 그 결과는 당연히 달라지는 것이다. 이것이 세상을 바라보는 중요한 관점이기는 하지만 이것이 가장 중요한 관점은 아니다.
두 번째로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은 세상이 하나님의 은혜로 가득차 있다고 보는 것이다. 즉 하나님께서 쉬지 않고 우리 가운데 일하고 계시다고 믿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을 떠난 인간이 쉽게 가질 수 없는 관점이어서 예수 믿고 난 후에 지속적으로 배우고 익숙해져야 할 관점이다.
아주 값싼 참 새 두 마리가 장터에서 팔리는 것도 하나님이 허락하셔야 되고(마 10:29), 하늘을 나는 새도 먹이시고 들의 백합화도 입히시고(마 6:26-30), 우리의 머리털까지 하나님이 다 세신다(마 10:30)고 하시니까 분명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아주 우리 가까이에 계신다. 그뿐 아니라 하나님은 우리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슨 말을 할지, 우리가 앉고 일어서고, 침대에 눕고 길을 걸어가는 그 모든 것도 다 보아서 알고 계신다(시 139:2-4). 그렇게 보면 하나님은 우리 삶 속에서 수없이 많은 일들을 행하고 계신 셈이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수없이 행하시는 그분의 활동을 교회에서 흔히 사용하는 말로 하면 ‘은혜’라고 할 수 있다. 은혜는 하나님의 액션을 표현한 단어이다. “예루살렘 교회가…소문을 듣고 바나바를 안디옥까지 보내니 그가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모든 사람에게 굳건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머물러 있으라 권하니”
세상이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로 가득차 있다고 가르치는 대표적인 책이 구약의 욥기이다. 욥은 정말 하나님의 말씀대로 철저히 살아간 의인이었다. 그런데 그가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을 만났을 때 잉과응보식 세상 이해를 가진 친구들의 관점으로는 도무지 해석이 되지 않아서 결국 하나님께 단독 면담을 청한다(욥 31:35). 하나님이 그 요청에 응해서 그를 찾아와서는 자연계에 일어나는 많은 예들을 들어가며 “네가 이것을 아느냐?”고 쉴새없이 질문을 쏟아내신다(욥 38-41장).
하나님께서 욥에게 가르치신 것은 은혜로 가득찬 세상이었다. ‘네가 지금까지 나를 경외해서 정말 최선을 다해 순종하며 살아온 것을 내가 잘 알고 있고 그 점에서 볼 때 네가 너의 친구들보다 훨씬 나은 사람이야. 나도 그것을 너무나 고맙게 생각하고 기쁘게 생각해. 그런데 말이야. 욥아, 세상을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시각을 네가 가져야 해. 그것은 내가 세상에서 쉬지 않고 일하고 있다는 사실, 즉 온 세상이 은혜로 가득차 있다는 것을 네가 인식하는 거란다.’
세상은 내 하기 나름이란 교만한 태도 말고, 하나님이 다 알아서 하실테니 어느 정도만 하면 된다는 식의 다분히 게으르고 무책임한 태도도 말고, 온 세상이 하나님의 일하심으로 가득차 있으니 그것을 믿기에 누구보다도 낙심하지 않고 열정적으로 살아가야겠다는 태도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