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ivp에서 나온 죄책감과 관련된 책을 읽은 적이 있었다. 정신분열의 저변에 이 죄책감이 다 있다고 했다. 죄책감이란 자존감이 낮은 감정인데, 스스로이든 주변 사람이나 사회의 분위기이든 내 자신이 부족하다 못해 가치가 없는 존재 같고, 심각하게 되면 내가 살아서 뭐하나 싶은 마음이 드는, 삶을 놓아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생각과 감정이다. 완벽주의 성향이 강한 사람, 착한데 마음이 여린 사람들, 아니 보통 사람과 같은 마음을 가졌는데 불행하게도 스스로의 힘으로는 감당이 안 되는 큰 상처나 힘든 상황을 만났을 때 누구나 이런 죄책감을 가질 수 있다.
그래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데 가장 큰 방해물은 이 죄책감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을 통해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그래서 우리가 얼마나 가치가 있는지를 보여주셨다. 즉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 주셨다. 그런데도 우리는 끊임없이 나 자신의 연약과 부족과 실수와 실패를 경험하게 되고, 거기에 주변의 평가와 판단까지 가세하게 되면서 우리는 죄책감에 사로잡히게 된다.
그래서 세상을 부정적으로 보고, 화가 차 있고, 비관과 자학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자기 슬픔에 빠지기 싶다. 그렇게 되면 주변 사람들을 사랑하고 섬기고자 하는 여유 있는 마음을 가질 수 없다. 가장 큰 문제는 하나님께 나아갈 의욕도 갖지 못한다는 것이다. ‘내 같은 걸 하나님께서 사랑하시겠어?’ ‘사랑하신다 하지만 기도해도 소용이 없는 걸?’ 기대감 없이 열정 없이 그분께 나아갈 의욕 없이 덥석 주저앉아 있기만 할 수 있다.
둘째 아들이 아버지를 떠나 결국 돼지를 치면서 쥐엄열매도 먹지 못하고 주저앉아서 자신의 실패한 인생을 후회만 하고 있었다면 그것은 죄책감이다. 그러나 그 아들은 아버지가 풍성하신 분임을 믿고 소망하고 그 자리에서 일어서서 아버지께 나아갔는데, 그것이 회복의 첫 발걸음이었다. 우리가 아무리 못나고 부족해도 괜찮으니 하나님께 나아가기만 하면 문제는 해결된다. 이렇게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해선 죄책감을 해결해야 하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인자를 자꾸 들려줘서 그것을 믿고 받아들이게 만들어야 한다. 계속 복음을 들려줘야 한다. 세상을 향해서도 들려줘야 하지만 교회 안에서 계속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야 한다. 사실 신약의 모든 성경이 교회를 향해서 그것을 전한 메시지였다.
히 10:22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Let us draw near to God with a sincere heart in full assurance of faith, having our hearts sprinkled to cleanse us from a guilty conscience and having our bodies washed with pure water.
하나님께 나아가지 못하게 만드는 ‘악한 양심’을 영어성경은 죄책감이라고 했고, 반대로 하나님께 나아가게 하는 ‘참 마음’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확실한 믿음에서 나오는 마음이라고 했다. 매일 매 순간 자기 부족으로 죄책감으로 괴로워하는 주변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십자가로 나타내 보이신 그 사랑과 은혜를 들려줌으로 격려해서 하나님께 계속 나아가도록 도와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