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EN MIND

시를 잊은 그대에게’ – 박형배

내가 배우 김태리 때문에 시작했다가 끝을 내지 못한, 작년 화제의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극중 김희성의 이 대사가 화제가 됐었다
“내 원체 아름답고 무용한 것들을 좋아하오. 달, 별, 꽃, 웃음, 농담…”

‘무용’ – 굳이 영어로 옮기면, 전혀 낭만적이지 않은 ‘useless’ 가 되겠다. 헌데 그후 70년이 지나 우리 시대에 참 ‘무용’해 보이는 것이 하나 더 있으니 바로 시(詩)가 아닐까 한다. 주변에 책 즐겨 읽는 사람은 종종 있어도 시집을 찾아 읽는 사람 찾기는 쉽지 않다. 검색을 해보니 봄철을 맞아 시집 판매가 크게 증가했다는 몇년 전 기사가 보이지만, 막상 서점엘 가보면 시집 코너는 그 규모도 작을 뿐아니라 수십년도 더 된 스테디셀러들이 거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적어도 디지털 매체에 익숙한 우리 세대와는 거리감이 생긴 게 분명하다.

5월 한달은 북클럽 2주년을 맞아 시집을 함께 읽었다. 스테디셀러인 윤동주와 정호승, 그리고 젊은 작가인 박준 시인의 책을 각자 선택해서 읽었다. 내 얘길 하자면, 책을 펼치자마자 당혹감을 느꼈다. 평소 책을 읽듯 슥슥 몇페이지를 넘기는데, 이해도 안되고 아무 느낌이 없었다. 평소 속독하는 습관 때문인가, 다시 읽어봤다. 페이지 당 열줄 남짓 되는 시들은 내게 외계언어 같았고, 이내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다. 아니, 초등학교 2학년때 소년한국일보에 시를 올린 적도 있었건만, 어느새 이리 메마른 사람이 되어버렸단말인가?

그건 감수성의 문제가 아니었다. 답답한 마음에 한참을 서성이다가 알게됐다. 아, 시인은 침묵을 사용해서 말을 하는구나. 아직 말로 표현되지 않은 빈칸, 행과 열 사이에 머물러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 시를 읽을 수 있구나. 그러니 내겐 읽히지 않는게 당연했다. 손가락 한번 까딱하면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세상에서 기다림이라니. 침묵이라니. 실생활에 유용한 정보도 아닌 텍스트 몇줄을 위해? 아니 세상에 이런 비효율적이고 무용한 헛짓이 또 어디있단 말인가!

그런데, 시집을 읽는 다는 건 성경말씀을 묵상하는 것과 많이 닮아 있었다 – 한 구절과 다음 구절 사이가 이어지지 않는 듯 가끔 불친절한 텍스트. 이 말씀이 내 삶에 어떤 의미인지 몰라서 나의 아침묵상은 종종 당혹스럽다. 다행히도, 성경말씀을 읽는 건 혼자하는 마음수련 같은 것이 아니다. 그 너머엔 ‘인격’이신 성령께서 계신다. 그렇게 이해하고 적용하기에 앞서 침묵으로 가만히 기다려봤던 지난 한달은, 마치 은혜로 옷을 지어 입은 듯한 시간이었다. (스마트폰과 인스타그램으로 빈틈이 없는 삶엔 이를 위한 공간 자체가 없다. 이 부분을 놓고 지난 몇달간 임상시험중인데, 내 삶에 큰 간증이 있다. 이에 대해 추후에 자세히 쓸 기회가 있을 것이다.)

생명을 위해 죽음을 택하고, 낮아짐으로 높아지는 복음의 역설처럼, 적어도 영혼의 일에 있어서라면 우린 시 읽는 사람처럼 비효율적이고 무용한 것들을 추구해보자. 생각해보면 인공지능과 유전자조작을 이야기하는 이 최첨단의 시대에 우린 2천년 전통의 성경을 읽고 있는 사람들 아닌가. 시대를 역행하는 이 해묵은 전통의 매력, 그 가운데 드러난 하나님의 열심에 사로잡혔던 한달. 내안의 큰 기쁨이 우리 지체들에게 전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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