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의 발달로 인해 우리는 많은 사람들과 쉽게 소통하게 되었고 오래 전에 헤어졌던 사람들과도 연락이 닿아 요즘 어떻게 살아가는지 속속히 알고 지내는 상황이 되었다. 직접 만나지 않더라도 하루에도 수차례 여러 사람들과 대화를 주고받으며 생활하고 있다.
그러나 이상스럽게도 그 회수에 비해서 외로움은 여전하고, 많은 ‘좋아요’와 댓글이 여러 사람에게 사랑받는다고 생각하려 하지만 그 깊이가 얕아서 그 site를 나오는 즉시로 그 느낌도 사라진다. 목소리 듣는 것도 약간의 부담감 되어서 텍스트로 대체하고, 얼마든지 사진을 찍어대고 수정도 입맛 따라 해서 그 중 제일 잘 나온 녀석만 고르다보니 진실과는 더 멀어지는 것 같다. 그래서 페북에 올라오는 근사한 레스토랑과 view가 좋은 배경으로 환하게 웃는 사진을 보노라면 진짜 속마음도 저래야 할 텐데 하는 마음이 자꾸 든다.
쉽게 먹을 수 있는 Junk food일수록 깊은 맛이 없듯이 인간관계도 쉽게 접속할 수 있는 편한 방식일수록 그 친밀함은 덜한 것 같다. 쉽게 쓰고 바로 전달할 수 있는 메일이나 텍스트보다 힘들지만 친필로 써서 편지를 보내야 했던 그 시절이 그립기만 하다. 나는 편지를 참 많이 써본 경력이 있어서 그 느낌을 잘 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시골에서 부산으로 전학을 한 적이 있었는데 너무 외로워서 친구들과 편지를 주고받기 시작했다. 어떨 땐 하루에 일곱 통이 올 정도로 하루도 빠지지 않고 편지를 주고받으며 그 삭막한 도시생활을 이겨냈다. 그 때 갈고 닦은 글 솜씨 덕분으로 글을 잘 쓴다는 말을 종종 듣곤 한다.
편지를 쓰려면 우선 편지지와 봉투를 고르는 것부터 해야 한다. 문구점에 가서 그와의 관계를 잘 보여주는 색상, 이미지, 짧은 글귀를 담고 있는 편지 세트를 찾는 것도 신나는 일이다. 그렇게 어렵사리 고른 편지지와 봉투를 가지고 집에 오는 내내 어떤 내용을 쓸지 내 머리는 여러 문장으로 가득 찬다. 깨끗한 편지지에 바로 쓰면 혹시 틀릴 수 있으니까 밑그림 그리듯 연습장에 쓰고 고치기를 수없이 반복하고서 마침내 내 마음을 담은 글을 완성한다. 그것을 멋진 편지지에 옮겨 적을 때는 철자 하나 틀리지 않으려고 너무 많은 신경을 쓰다 보니 다 적고 나면 손가락 사이에 볼펜으로 쑥 들어간 자국이 남고 어깨는 뻐근해 온다.
그리고 그 편지지를 봉투 사이즈에 맞게 삼등분해서 잘 접어 봉투에 넣고 풀질해서 봉하고 표지에 주소를 적을 땐 내 마음은 벌써 그 사람이 살고 있는 곳에 가 있다. 우표까지 붙이고 나면 ‘휴우~!’ 깊은 숨을 내뱉고는 그 편지를 두 손에 꼭 쥐고 집 근처 우체국통을 향해 간다.
그렇게 해서 그 편지가 도착하면 그는 며칠을 무척이나 기다렸던 편지였던지라 그것을 보는 순간 업 된 기분으로 급하게 봉투를 뜯는다. 하지만 막상 읽어 내려갈 때는 곱씹으며 읽고 또 읽기를 반복한다. 그러는 중에 어느새 그는 나와 마음이 하나가 되고 내 글씨체는 나의 외모로 여겨져서 환한 미소를 머금게 한다. 그렇게 편지를 쓸 수 없게 만들어버린 이 시대와 분주한 내 삶이 서글프기만 하다. 친밀함은 정성이 들어간 관계에서 이뤄지는 법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