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EN MIND

사람은 어떻게 바뀌는가?

성경에서 하나님은 사랑이시라고 말한다(요일 4:8).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친히 자신의 영광을 맛 뵈기로 보여주시면서 자신을 소개한 구절들(출 33:19, 34:5-7)에서도 공의보다 사랑의 성품이 월등하게 우선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최근 몇 년간 수련회 말씀을 전해오면서 예전에 알지 못했던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깨닫게 되는 일들이 많았다. 예를 들면,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인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을 그토록 싫어한 이유가 그분의 파격적인 사랑의 방식이었다는 점이다. 예전 같으면 바리새인들의 외식적인 종교생활을 비판하셨기 때문에 예수님을 미워했다고 생각했는데, 곰곰이 그 상황을 보면 다 예수님의 지나친(?) 사랑의 방식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안식일에 병자들을 고친다거나 배고파 이삭을 비벼서 먹은 제자를 두둔한 것이거나, 세리와 창녀와 죄인들의 친구가 되어 식사하며 교제하신 것 등이 대표적이다. 그것들이 당시 유대 전통을 어기는 일이었지만 예수님에게서는 당신이 구원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사랑하는 방식이었다.

요나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니느웨로 가서 심판의 메시지를 전하지 않고 그 반대편으로 배를 타고 도망을 친 이유도, 나중에 회개하고 그곳으로 가서 메시지를 전한 후에 그토록 하나님께 화를 내면서 항의한 이유도 하나님의 사랑의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였다. 하나님의 많은 사랑이 모든 사람에게 환영을 받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화나게 만든다.

이번 부활절 수련회에서 ‘십자가’만을 두고 집중해서 말씀을 나눈다. 이 주제를 가지고 말씀을 준비하면서 또다시 느끼는 것은 ‘정말 하나님은 사랑이 많으시구나, 아니 사랑 그 자체이시구나’하는 것이다. 십자가는 두말할 나위 없이 하나님의 사랑의 절정이다. 그런데 삼위일체 하나님의 관계 안에서도, 그분의 창조와 인간의 타락 심지어 그렇게 말 많은 선악과를 만드신 것에서 조차도 그분의 사랑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은 우리를 대하실 때 정말 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속이 터질 정도로 오래 참으시는 분이시다. 머리 나쁜 사람들은 이런 하나님의 통치 스타일에 항의도 하고 아니면 아예 그분이 존재하지 않는 근거로 삼기도 한다. 우리 일상에서 그분을 두려워할만한 일들을 경험한다 해도 아주 가끔인 이유도 이런 하나님의 독특한 스타일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의 삶은 하나님의 한 방의 매가 아니라 그분의 사랑으로 달라진다. 하나님께서 아주 확실하게 심판하실 수 있는 능력이 있으심에도 십자가에 자기 아들을 내어놓는, 머리 나쁜 우리가 보기에는 너무나 미련하게 여겨지는 그 사랑의 방식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셨다. 명심하자! 우리가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것은 그분을 덜 무서워해서가 아니라 그분을 덜 사랑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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