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수요예배 설교를 하면서 물질(돈)에 대한 예수 그리스도의 평가를 접하면서 그것이 내 가치에 깊이 뿌리내렸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다. 그분은 돈이 ‘내 인생의 의미를 주는 것 중에 가장 작은 것'(눅 16;10), ‘아니 때로는 내 인생을 심각하게 망칠 수도 있는 불의한 것'(눅 16:11), ‘많이 가졌다고 내 가치가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 사용할 때 비로소 드러나는 것이어서 소속으로 보면 본래 내 것이 아니라 남은 것'(눅 16:12)라고 하셨다.
내가 가진 것으로 나의 존재 가치를 매기는 것이 맞다고 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이 너무 불공평하다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누구는 태어날 때부터 더 똑똑하고 더 많이 가지고 더 잘 생겼기 때문이다. 그런데 각자 사람마다 다르게 그것들을 주신 하나님은 그것이 우리 인생의 참된 의미와 풍성함을 준다고 생각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 불공평하다고 생각지 않으신다.
내가 그렇게 많이 산 것은 아니지만 50평생을 살아보니 이 하나님의 말씀이 옳다는 생각이 든다. 나이가 어릴 때는-나이가 들어도 생각이 어리면-앞으로 살아가면서 내가 뭔가를 많이 성취하는 것에 큰 의미를 둔다. 나 역시 이 부분이 중요해서 할 수 있는 한엔 최선을 다해서 최고를 만들어내야 한다고 누누이 강조한다. 그러나 우리 삶의 많은 성취가 우리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대단히 중요하지는 않다!
이런 생각은 아내가 예기치 않은 일이라 약간은 힘들고 당황스런 다섯 번째 임신을 하면서 하나님께서 내게 가르쳐 주신 것이다. 의외로 많은 청년들이 결혼하고 또 아이를 낳으면 자신의 인생이 희생을 당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결혼을 미루고 또 아이를 낳지 않으려고 하고 낳아도 한 두 명만 낳고 어서 자기 시간을 확보해서 그 동안 하고 싶은 여러 일들을 이루고 싶어 한다. 왜냐하면 그 많은 성취가 곧 크고 선하고 나를 확대시키는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편이 되고 네 명의 아버지로 살면서 당연히 능률적으로 성취하지 못한 일들이 많겠지만-사실 결과는 정 반대였다-그 대신 그 힘겨운 시간들이 진짜 크고, 선하고, 내 것이라 할 수 있는 성숙한 인격과 삶의 깊이를 더해주었다.
다섯 번째 아이가 생김으로써 그에게 시간과 에너지를 또다시 쏟아야 하고 그러다 내 인생의 중요한 후반전이 저물 수 있다 해도, 그래서 또다시 내가 이루고자 했던 성취를 포기한다 해도 이 아이가 가져달 줄 또 다른 나의 성숙과 삶의 깊이를 생각하면 감사한 일이다. 일의 성취의 노예로 살지 말고,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그분을 알아가고 또 그분을 닮아가는 것이 진짜 삶이다. 인생의 참 의미와 기쁨은 결코 많은 성취에서 오지 않고 성숙에서 오는 것이다. 본래 살면서 내가 이루는 성취는 나의 성숙으로부터 자연스런 흘러나오는 열매와 같아야 한다. 성숙 그리고 성취, 이것이 바른 순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