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므로 너는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이렇게 행함은 너희를 위함이 아니요 너희가 들어간 그 여러 나라에서 더럽힌 나의 거룩한 이름을 위함이라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더럽혀진 이름 곧 너희가 그들 가운데에서 더럽힌 나의 큰 이름을 내가 거룩하게 할지라 내가 그들의 눈앞에서 너희로 말미암아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여러 나라 사람이 알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겔 36:22-23)
하나님께서 우리를 심판하시는 이유와 그 이후에 우리를 회복시켜 주시는 이유는 그분의 이름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방인과 달리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그분의 백성이다. 즉 하나님의 이름이 있는 백성이 된 것이다. 마치 결혼한 부부와 낳은 자녀와 같다.
이름이란 단순한 명칭이 아니다. 부모가 자기 자녀의 이름을 지을 때 부르기 좋게 짓는 것보다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짓는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이름이란 하나님의 인격을 말한다. 하나님이 자신의 이름을 직접 소개하신 적이 있다.
“여호와께서 구름 가운데에 강림하사 그와 함께 거기 서서 여호와의 이름을 선포하실새 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선포하시되 여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 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 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리라 그러나 벌을 면제하지는 아니하고 아버지의 악행을 자손 삼사 대까지 보응하리라”(출 34:5-6)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 하시는 분’이시다. 신약에 와서는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했다(요한일서 4:8). 하나님이 그런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죄를 지었을 때 심판을 하시지만 끝내 회복하실 수밖에 없다. 자기 백성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실 수밖에 없다. 우리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어떤 희생도 감수하신다. 이것이 십자가에 돌아가신 이유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전 삶을 통해서 이 이름을 드러내기 원하신다. 우리가 그분께 죄를 지어서 심판을 받든지, 아니면 그분이 우리에게 큰 복을 주시든지 우리를 향해 행하시는 모든 일들은 은혜요 사랑으로 가득 차 있다.
우리가 구원을 받고, 구원 받은 후에 우리가 거룩한 백성이 되어가는 것도 우리의 행위가 아니라 그분의 이름 때문이다. 우리를 영원히 사랑하겠다고 결심하신 그분의 사랑 때문이다. 하나님의 이름이 우리의 모든 회복의 근거이고, 우리의 모든 삶이 지탱되는 이유이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시 23:3)
그래서 우리는 매일 그 하나님의 이름을 의지하며 살아야 한다. 특히 너무 부족해서 내 자신이 믿을 수 없다고 여겨질 때, 너무 힘들고 어려워 모든 게 막막할 때, 받은 상처가 너무 깊을 때 그분의 이름을 의지하며 살아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