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를 믿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주님과 생생한 만남과 교제를 원한다. 물론 바울의 말대로 ‘지금은 거울(당시에는 희미한 청동거울)로 보는 것처럼 희미하고, 장차 예수 그리스도가 오셔야만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보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은 고려해야 한다(고전 13:12).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매일의 삶에서 그리스도와 개인적이면서도 실질적인 교제를 기대하는 것도 당연하다. covid 19사태를 통해서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살아계시다’고 고백하는 신앙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많이 느꼈다. 오프라인으로 모일 때는 몰랐는데 확실히 혼자 고립된 생활을 하면서 정말 그동안 내가 예수 그리스도와 생명력 있는 관계를 가져 왔는지를 돌아보게 만든다.
그러면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와 개인적인 친밀한 관계를 가질 수 있을까? 가장 건강하고 일반적인 방법은 성경묵상이다. 그런데 의외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을 어떻게 묵상하는지 모르고 있다. 성경을 읽는 것과 성경을 공부하는 것은 익숙한데, 성경을 통해서 개인적으로 주님과 교제하는 경험을 하는 묵상은 잘 못하는 것 같다.
늘상 나누지만 성경묵상은 ‘성경읽기’나 ‘성경에서 교훈찾기’ 정도가 아니다. 묵상은 ‘성경을 통해서 주님이라는 인격과 교제하는 시간’이고, ‘그분이 내게 개인적으로 말씀하시는 것을 경험하는 시간’이다. 그래서 모든 인격적인 관계에서 필요한 ‘마음을 쏟는 헌신’이 필요하고, 무엇보다 ‘하나님을 바라는 기도의 시간’이 반드시 요구된다. 단순히 성경이라는 ‘책’을 파헤치며 뜻을 발견하는 ‘지적인 작업’이 아니란 말이다.
이번 주에 개인골방세우기 모임에서 요한계시록 2장에 나오는 버가모 교회에 주신 말씀을 같이 묵상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방신전과 황제숭배신전에 참여하지 않으면 실질적인 사회적 불이익과 로마의 반역자라는 낙인이 찍혀 경제활동과 사회활동 자체가 어려운 그곳에서 많은 성도들이 타협하고 있었다. 이 내용을 보면서 자연스레 ‘오늘날 내 삶에 이렇게 타협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라고 질문하며 적용거리를 찾고 있었다.
이 모임을 시작하고 처음으로 소그룹으로 나눠서 서로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다시 전체로 모여서 오늘 하나님이 각자에게 주신 마음을 가지고 기도하자고 하면서 기도를 시작했다. 그런데 순간 하나님께서 ‘기도’의 중요성을 반딧불처럼 내 맘에 비춰주셨다. 이건 본문에도 없는 의외의 생각이었다. 그런데 기도가 버가모교회처럼 현실적인 어려움 속에서도 우리가 타협하지 않게 하는 능력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자리에서 이번 주일에 기도에 대해 설교해야 하겠다고 결정했고, 개인골방시간에도 기도시간을 적극적으로 고려해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이것이 묵상하면서 주께서 개인적으로 말씀하시는 경험이라고 할 수 있다. 적용은 그냥 지적인 작업으로 이뤄지는 너무 일반적인 말, 그러나 사실 별로 감흥이 없는 실천 목록이 아니다. 실질적으로 마음과 태도를 바꿔놓을 만한 감동이 있는 메시지여야 한다. 이때 받은 그 기도에 대한 마음은 아직도 내 안에서 꿈틀거리고 있다. ‘기도해야 하는데’라는 당위성이 아니라 ‘정말 기도하고 싶다.’는 갈망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