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간 우리나라 국민들이 정치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다. 투표율이 낮은 나라가 좋은 나라라는 말이 있다. 이상하게 들릴 수 있지만 정치인들이 정치를 잘 하면 국민들이 그만큼 믿고 관심을 덜 갖는다는 말이다. 그런데 나라가 시끄러우면 국민이 걱정이 되어서 피켓을 들고 광장으로 뛰쳐나오고 투표장으로 몰리는 것이다.
정치권에서 가장 많이 회자되어온 말 중에 하나가 공정이다. 이것을 우리가 흔히 쓰는 말로 하면 공의와 정의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이 무엇인지를 설명하려면 두꺼운 책을 쓸 정도로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일거다. 그런데 그동안 성경을 묵상하면서 나름 또렷이 정리된 것이 있다. 우리 한글성경에는 이 둘이 혼용해서 사용되고 있는데 그만큼 둘이 밀접해서 그런 것 같다.
영어로는 justice, righteousness이다. Justice는 요즘 흔한 말로는 공정, 공평, 예전 말로 하면 공의에 가깝다. 진영논리에 사로잡혀 상황을 판단하지 않고 옳고 그름에 따라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산상수훈에 나오는 말씀인 ‘오른뺨을 돌려대면 다른 뺨도 돌려대라’, ‘소송을 걸어 속옷을 가지려 하는 자들에게 겉옷까지 주라’는 말씀이 공의까지 부정당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말씀이 아니다.
세상은 절대로 공의롭지 못하고 심지어 가장 공의로워야 할 재판정도 그렇지 않을 때가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걸 보고 복수심에 가득 찬 인생을 살지 말고 예수님처럼 바울처럼 공의롭지 못한 것에 항의는 하되 최종 심판을 하나님께 맡기고, 내가 가야 할 길은 멈추지 않고 가는 것이 옳다.
더구나 Justice관점으로만 일을 처리하면 상대의 필요를 채울 수 없는 딱한 일들이 많다. 그렇다고 해서 Justice를 어겨가면서 그를 두둔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면 justice를 지키면서도 상대의 필요를 채울 수 있는 길은 없는가?
가장 확실한 방법이 있다. 그건 바로 내가 희생함으로 그 필요를 채우는 것이다. 이것을 성경은 Righteousness라고 말한다. 주님이 먼저 그렇게 사셨고, 이제 우리더러 Justice를 세우는 Righteousness를 적극 실천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Justice는 냉철한 이성에 가깝다면, righteousness는 따뜻한 마음에 더 가까운 것이다. 그러니까 righteousness는 적극적으로 justice를 실천하는 주님의 방식인 셈이다.
로마서 3:21-22 But now a righteousness from God, apart from law, has been made known, to which the Law and the Prophets testify. This righteousness from God comes through faith in Jesus Christ to all who believe. There is no differen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