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 시내 전도를 할 때 주로 나와 짝이 되는 사람들은 거리 전도가 처음인 사람들이다. 아마 우리교회에 와서 처음 전도해 보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대부분 거리 전도에 대해서 부정적인 생각들이 많다. 한국에서 이단들이나 그렇게 한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이 말을 들을 때마다 궁금해지는 것이 있다. “이단들이 거리에서 전도하면 교회는 가만히 있어야 하는 건가?”
‘설마 길에서 전도하는 그들의 말을 누가 믿겠어?’ 그런 생각이 들어서인가? 아니면 인정하기 싫지만 다른 사람들이 지옥에 가든 말든 별로 관심이 없어서 그런 건 아닌가? 그게 아니라면 이단들이 사람들에게 접근할 때 다가가서 ‘저 사람들은 이단들이니까 그들의 말을 듣지 말라’고 말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
왜 이단들은 창피한지도 모르고 그렇게 열심히 거리에서 전도하는 걸까? 물론 그들의 교리가 그렇게 해야만 구원을 받는다고 가르치는 것도 있지만, 적어도 자신이 믿고 있는 것에 분명한 확신이 있어서 그럴 것이고, 또 거리에서 그렇게 전도하다 보면 실제로 포획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데 그렇게 오랫동안 열심히 할 리가 없다.
이단의 교주들이 자기 사람들을 그렇게 열심히 거리든지 갖가지 문화행사든지 간에 전도에 열을 올리게 만드는 가장 큰 이유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들이 생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만일 이단이 자기 건물 안에서 사람들이 저절로 찾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으면 그들의 교세를 확장시킬 수 있을까? 그렇지 않아도 이단이라고 하는데 누가 제 발로 그곳에 간단 말인가? 소수이고 비주류이기 때문에 스스로 발 벗고 나서서 않으면 성장할 수 없는 것이다.
결국 한국교회가 전도하지 않은 이유는 이 사회의 주류이기 때문이다. 즉 가만히 있어도 사람들이 교회에 몰려왔던 시대를 보냈다. 197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까지 하나님께서 우리 한국교회를 그렇게 축복하셨다. 교회 간판만 걸어놓으면 습기 찬 지하실에도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조금 살기가 좋아지면서 지하실 교회는 선호하지 않았지만 인테리어 잘해 놓고 괜찮은 설교와 제자훈련 프로그램만 가동하면 수평이동이라도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러나 지금은 미국도 한국도 가만히 있는데도 교회가 성장하는 시대는 끝났다. 교회를 분립개척하는 것에 대해서 다들 좋게 생각하는데, 만일 그 나가는 사람들이 전도할 야성이 없으면 현상 유지도 어려울 것이다.
기독교는 처음부터 박해 가운데 전도를 통해서 성장했다. 사도행전을 조금만 읽어봐도 그것을 알 수 있다. 그동안 한국교회가 과분하고도 특별나게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받은 것이었다. 다들 요즘은 사람들이 교회에 대해서 인식이 너무 안 좋아서 전도가 잘 안 된다고 하는데,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전도하지 않을 이유인가? 남 탓으로 돌리면서 전도하지 않을 그럴싸한 구실을 찾아낸 구차한 변명이다. 그동안 할 필요가 없어서 적극적으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전도가 너무나 낯설게 되어버린 것이다. 그러나 그 낯선 전도를 목회자도 성도들도 이제 용기를 내서 해야 할 때가 되었다. 그렇지 않으면 교회는 머잖아 비주류가 되고 소수로 전락할 것이다. 전도가 익숙해질 때까지 토요일에 열심히 전도해 보자. “성령님, 임하셔서 우리를 증인 되도록 만들어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