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이 되면 런던에서 사역한지 11년이 된다. 이렇게 하나님이 보내실 줄 알았으면 미리 준비도 했을 텐데 마지막까지 비자 준비로 마음 졸이며 지내야 했었고, 여기 와서도 기본적인 의사소통도 안 되고 이민 목회, 담임목사도 처음 해 보는 거라 적응하기 바빴다. 교회도 담임 목사 없이 2년 가까이 공백 상태였기에 아무래도 교회를 세워가는 데 올인해야 했었다. 그래서 교회 집, 집 교회 이렇게 오가며 정말 무식하게(?) 지냈는데 그래도 행복하게 사역했다. 물론 어려움도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소천하신 목사님의 헌신과 성도들의 수고로 든든한 터가 마련되어 있었기 때문에 쉽게 적응할 수 있었다. 거기다 하나님의 은혜로 매월 교회는 건강하게 성장해 갔고, 그런 변화에 발맞추기 위해서 새로 셉업시켜야 할 일들이 많아서 나와 가정을 돌아볼 여력이 안 되었던 같다.
그래서 누구나 쉽게 갈 수 있는 유럽도 체코에 아는 선교사님 뵈러 그리고 독일도 세미나 차 방문한 적은 있어도 아내가 그렇게 가고 싶다고 노래하던 프랑스 파리도 미안하게 못 가 봤다. 다행이 런던과 인근은 손님 접대나 교회 행사로 갈 수 있었고 그 좋다는 에딘버러도 영국 온지 7년 만에 동문 후배가 글라스고에 살고 있어서 하루 둘러보고 올 수 있었다. 오직 사역에만 집중하는 나를 보고 오래 함께 했던 성도는 우스갯소리로 국가에서 정해준 법정휴가를 쓰지 않는 것은 불법이라는 말을 할 정도로 쉬지 않고 앞만 보고 달려왔다.
아직도 신경 쓸 부분이 많지만 최근에 한국을 다녀올 일이 있어서 몇 주 교회를 비웠는데도 많은 일꾼들이 열심히 섬겨주는 것을 보면서 이번에 용기를 내어 넉 달간 안식 월을 갖기로 했다. 나도 그렇지만 진짜 늦은 나이에 아이를 낳아서 몸도 마음도 지쳐있는 아내와 점점 더 자기주장이 강해지는 두 살 여준이, 저녁과 주말에 사역이 몰려 있다 보니 정작 필요할 때 함께 해 주지 못했던 초등학생 여호수아를 위해서도 필요한 시간인 것 같다.
사실 여원이가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있고, 여호수아는 학교를 그만 둬야 할 상황이어서 필요성을 느끼면서도 엄두가 안 났는데 집사님들이 계속 권해 주기도 했고, 설사 여건이 힘들어 런던에 머문다고 해도 영국 내에 가보지 못한 명소뿐만 아니라 배울 수 있는 교회들과 신앙유적지도 많아서 좋은 시간을 가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는 안식년을 맞아 일부로라도 미국과 유럽을 오고 싶어 하는데 나는 여기 있으면서도 다행이도 누린 게 없어서 런던을 베이스를 두고 한국뿐만 아니라 영국과 유럽을 둘러봐도 좋을 것 같다.
1991년부터 교회 사역을 시작한 후로 한국에서는 1년에 5일 휴가가 전부였고, 여기 11년도 별반 다를 바 없이 사역해 오다가 갑자기 이렇게 많은 시간이 주어지니 기대도 되면서도 잘 써야 할 텐데 하는 부담감도 솔직히 많다. 안식월 동안 어떻게 보내야 할 지 그 해야 할 목록들을 정하는 내 모습을 보면서 이것마저 안식을 방해하는 것 같아서 다 주께 맡기기로 했다. 모처럼 좋은 선물을 교회를 통해서 주님이 주셨으니 잘 쉬고 많이 충전되어서 우리 성도들을 다시 뵙기로 했다. 가장 걸리는 것은 내가 없는 동안 파송 받아 떠나는 성도들이다. 카톡이라도 꼭 인사 나눴으면 좋겠다. 잘 쉬고 올 테니 그 동안 교회를 잘 지켜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