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곱슬머리다. 고데기로 공들여 펴 놓아도 비 오는 날이면 밖을 나서는 순간 폭발해 원래 모양을 찾아 제멋대로 구불거린다. 한참 스트레스받다가 어느 날은 고 모양새가 꼭 나랑 닮았다는 생각에 웃음이 났다. 중간부터 스트레이트 펌으로 어색하게 일직선인 부분에 두 번 웃었다.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한 그리스도인으로 보이려 노력해 보지만 상황이 어려워지면 스멀스멀 드러나는 고집스럽고 죄된 본모습이 어쩜 딱 그렇다.
5살 때 제 발로 찾아 들어간 교회(춤추는 곳인 줄 알았다)의 품에서 자란지 25년.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도 20대 초반까지 나의 치명적인 단점은 ‘잠수’였다. 몹쓸 성실함 덕에 늘 믿음 좋은 자매로 여겨졌으나 얄팍한 실상이 드러날까 공동체 안에서 깊고 장기적인 관계를 맺는 것이 부담스러웠고, 소리 없이 사라져 주변을 당황스럽게 했다. 말씀/상황/사람을 통해 하나님은 나를 혹독하게 때론 자상하게 훈련시키셨다. 때를 기다리는 법, 도망치지 않고 버티는 경험, 용서, 터놓고 중보하는 관계 등 많은 것을 가르치시고 감당할 새 역할을 맡겨 주셨다. 허물을 극복한 성숙한 자녀로 거듭난 듯이 보였다.
런던에 오기 전후 두려운 마음으로 기도한 대로 공동체와 일자리를 얻었다. 감사도 잠깐, 새로운 생활에 적응해 일상이 단조로울 정도가 되자 하나님 도우심에 대해서 싹 잊고 교만함이 싹텄다. 햇빛 쨍할 때 숨겨졌던 본성이, 축축한 습기에 정체를 드러냈다. 사람이 미웠고 말씀이 들리지 않고 토요일 찬양 연습시간이 아깝고 셀모임이 시시했다. 혼자서도 충분히 신앙생활 할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에 연락을 두절하고 교회를 떠나 예배를 입맛대로 골랐다. 완쾌되었다고 믿었던 병이 또 도지다니. 스스로 충격이면서도, 장마철 손 쓸 길 없는 머리카락처럼 굽이굽이 방황했다.
몇 개월이 지나 영적 상태는 바닥을 쳤고 생활에도 영향을 미쳤다. 계획에도 없이 한국에 갈 일이 생겨 찾은 모교회 예배에서 때마침 하나님은 내게 공동체로 돌아가는 것이 해답이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주셨다. 부끄럽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모든 값을 치르셨음에도 아직 고쳐지지 않은 죄를 갖고 있음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 남 탓을 했다. 오늘 이겨도 내일 질 것 같은 패배감에 젖어가는 내게, 그렇기에 의롭다 칭하는 것은 행위가 아닌 오직 믿음으로인거야! 문자로만 알던 말씀을 몸소 깨닫게 해주셨다. 겸손히 순종할 것을 결단한 후 다시 찾은 꿈교회는 모든 것이 그대로였지만, 오직 하나 마음을 새롭게 하시니 모든 것이 사랑스럽고 은혜가 넘쳤다.
앞으로도 나는 평생 모근부터 제멋대로 방향을 뒤튼 곱슬머리로 살아가겠지. 비슷한 실수를 반복할 수도 있겠다는 각오를 해 둔다. 하지만 (우스운 비유지만) 매일 아침 부스스한 머리를 멀끔하게 만들어보겠다고 씨름하듯, 믿음의 짐을 지고 하나님께 바싹 붙어 내 안의 약함과 이기고 지는 싸움을 하루하루 싸워 나가보자는 다짐도 같이 해본다. 그분은 높은 확률로 지고마는 나를 평생 불쌍히 여기시고, 사랑하시고, 필요하다면 다듬으시고, 적합한 자리로 계속 파송하실 것이다. 낮은 자세로 음성에 귀 기울일 때 하나님께서 나를 그저 시름하며 뒹굴고 있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심을 이제 확실히 안다.
영국에 올 수 있어 참 좋았다. 불완전한 자신과 솔직하게 마주하고 하나님과 더욱 가까워지는 계기가 되었다. 귀국을 며칠 앞둔 지금, 2년 전과 같이 눈앞이 보이지 않지만 앞으로의 삶도 인도하고 동행하실 것을 믿기에 용기 내어 한 걸음 내딛어 본다. 어느새 이곳에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겨 헤어진 후 한동안 많이 마음 아프겠지만, 우리 공동체가 건강과 작은 소망과 행복을 잃지 않기를 먼 곳에서 기도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