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옛 속담에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이 있다. 그러니까 나이 들어서 고생하면 자기뿐만 아니라 딸린 식구까지 낭패를 당하지만 젊어서 하면 그럴 일도 없다. 더구나 고생하는 게 당시는 힘들지만 지나고 보면 그것 때문에 사람답게 되고 성숙해지니까 돈을 주고서라도 사라는 말이다. 실제로 믿음 하나만 봐도 대형교회 제자훈련 프로그램을 잘 받은 사람보다 작은 교회에서 여러 가지 봉사를 힘든 가운데서도 해낸 사람이 훨씬 더 낫다는 말이다. 이 말이 성경공부보다 봉사를 더 우선시하는 것이 아니라-마르다가 되기 전에 마리아가 먼저 되어야 한다-책상 앞에서 학습하는 것보다 힘든 상황을 견뎌낸 믿음이 더 단단하단 뜻이다.
최근에 허리 근육이 약해졌는지 아침에 일어나니까 허리가 즉각 펴 지지가 않았다. 펜데믹 전에 침대에 누워있어도 다리가 당길 정도로 아파서 고생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하루 1시간씩 마을 주변을 걸었던 적이 있었다. 주로 집에 성경을 연구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주변을 둘러볼 생각을 안 했는데, 그때 1시간을 채우기 위해서 가까운 공원 내부 이곳저곳을 샅샅이 뒤지며 걸어보기도 했다. 그리고 주변 주택가 여러 골목들을 발길 닿는 데로 다니면서 집마다 입구가 어떻게 장식되어 있는지 보는 재미도 있었고, 혼자 사색하는 시간도 되고 기도, 찬양, 드라마 성경을 듣는 것도 좋았다. 그렇게 며칠 하니까 통증이 사라지고 몸도 건강해지는 재미를 맛보았기 때문에 이번에도 걷기를 시작했다.
나이가 드니까 몸의 이상을 많이 느낀다. 시력은 몇 년 전부터 작은 글씨를 보기가 힘들어졌고 가까운 건 안경을 벗고 보는 것이 더 선명하다. 얼굴의 감각도 약해지다 보니 밥알이 입가에 붙어있어도 못 느낄 때가 많고, 분명 잘 피해간다고 하는데 팔다리가 주변 사물에 부딪히는 경우도 잦다. 예전 같으면 계단을 오를 때 아무 생각없이 팍팍 뛰어올랐었는데 요즘에는 오른쪽 다리 쪽이 왠지 불편해서 신경이 쓰인다.
나는 태생적으로 건강한 체질이어서 운동하지 않아도 잔병이 없고, 아침에 자고 일어나면 거뜬하게 생활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몸의 이상 증후들을 보면서 무엇보다 근육훈련을 해야 할 것 같아서 꾸준히 걸을 생각이다. 이번에 걸으면서 신앙에도 이런 근육같은 것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운동이든 처음에는 힘들지만 계속하다 보면 몸에 근육이 강화되어 가벼워졌다는 것을 느끼듯이 인생도 근육 같은 것이 있는 거 같다.
삶은 어려움의 연속이다. 특히 인간관계에서 겪는 갈등들은 가까운 사이일수록 오랜 시간 참아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처음에는 참지 못해서 여과 없이 말을 쏟아내고, 감정도 그대로 표출하지만, 주님을 찾으면서 견디다 보면 어느새 주변에 위로해줄 사람을 찾을 필요도 없이 혼자서 잘 소화해 내는 여유도 생기고 상한 마음을 걸러내는 속도도 확실히 빨라지는 것 같다. 왜 하나님은 내 기도에 응답하지 않나 답답할 때도 있었지만 주님은 ‘인내’라는 그 중요한 신앙의 근육을 길러주는 것으로 응답하고 계셨다.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이루는 줄 앎이라’(롬 5:3-4),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약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