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어가면서 인내, 참는 것이 정말 중요하구나 하는 것을 깨닫는다. ‘그때 참고 그 말만 하지 않았어도 그렇게 크게 마음 상할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텐데’ 이런 생각을 반복해서 하게 되고, ‘참고 또 참으면서 지내왔더니 보이지 않는 내 내면이 많이 성숙해진 것을 느낄 수 있다.’는 고백을 하게 된다. 참지 못해서 얼마나 많은 문제가 생기고 깊은 상처를 주고 인생이 꼬이는 경우가 많은가?
확실히 인내는 성숙한 인격의 한 표현이다. 인내하지 못하는 이유는 내가 약해서 그렇다. 마음이 안정되지 못하거나 처리되지 못한 상처로 인해서 약간이라고 그것을 건드리는 말이나 상황이 생기면 불끈 화를 내거나 표현을 안 해도 마음이 뒤틀려져서 얼굴이 굳어진다.
문제는 나를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 늘 만나고 상대하는 사람들이 내 마음에 꼭 들게 말하고 행동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그들은 내 마음이 어떤지, 내가 어떤 상황에 있는지 깊이 고려하면서 정말 내가 듣기 원하는, 들으면 힘이 되고 위로가 되는 말을 골라서 하지 않는다. 도리어 오해해서 말하고 잘 알지 못한채 말하고 행동하기 일쑤다. 그것은 나도 마찬가지이다. 그것도 그럴 것이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져야 할 자기 짐들이 있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도 버거워서 다른 사람을 배려하며 살아갈 여력이 없는 것이다.
더구나 내가 대면하는 매일의 상황은 내가 원하고 마음먹은 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내가 계획하고 바라는 것들이 순조롭게 이뤄지지 않는 일들이 더 많다. 이번의 팬데믹처럼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내 힘으로 도무지 매니지가 되지 않는 일들을 살다 보면 많이 만난다. 그래서 사람이든 상황이든 내가 참지 않으면, 기다리는 법을 배우지 못하면 산다는 것 자체가 힘겨운 것이다.
그래서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배워가고 때로는 마음에 두고서 일궈가야 하는 것이 참고 인내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인내의 덕목을 스스로 기르고자 하는 사람은 없다. 왜냐하면 이것은 긴긴 어려움을 통해서 내 안에서 조금씩 자라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환난은 인내를…이루는 줄 앎이라”(롬 5:3-4) 하지만 어느 누가 어려움을 좋아하겠는가? 그래서 많은 경우에 하나님은 우리의 평생을 편안하게 살게 하기 위해서 잠시 편안하지 않는 이런저런 어려움을 허락하시고, 간절히 기도하지만 너무 더디게 응답하시듯이 우리를 대하시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즉각 응답해 주지 않는 식으로 우리를 위해 주고 계신 것이다.
하나님의 모든 성품들이 내 안에 제대로 이식되려면 여러 환난을 겪으면서 인내의 뱃심을 길러야 성공할 수 있다. 그래서 옛 속담에 ‘젊을 때 고생은 (돈을 주고) 사서도 한다’고 했던가? 오늘도 인내하는 능력을 익혀가는 하루를 보내야 하겠다. 사랑은 인내로 시작해서 인내로 마친다. 정말 하나님께서 그렇게 우리를 사랑하셨고 지금도 그렇게 사랑하고 계신다.
“사랑은 오래 참고…모든 것을 참으며…모든 것을 견디느니라”(고전 13:4,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