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주일 예배는 당연한 것, 다리가 아파도 휠체어를 타고 갈 수 있는 그런 것이다. 그러나 그게 전부였다. 예배에 나가 앉아있을 뿐 기도와 찬양은 없었고 말씀 또한 경청하지 않았다. 그러니 누군가 내게 묵상, 혹은 성경 공부라는 말을 했을 때 대충 듣고 말게 되는 건 당연한 귀결이었다. 공동체의 사랑? 몰랐다.
수요 예배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다. 주일 성수만이라도 잘 지키는 게 최선이라고 여겼던 내가 수요 예배를 갈 이유도, 중요한 명분도 없었다. 내게 목사님의 주일 말씀은 꽤 자주 쉽지 않았다. 이러다가 교회를 옮기게 될까 싶었다. 이 교회에 온지 1년하고 몇 개월이 지날 무렵, 나는 수요 예배를 처음으로 나가게 되었다. 수요 예배는 어떤가 하는 마음과 더불어 런던에서 지내며 일련의 크고 작은 사건들을 겪었고, 또한 세상 사람과 가뜩이나 크게 구별되지 않는 나에게 어떤 장치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을 주중 한 번 더 예배당에 보내는 것이었다. 주일 성수만 지킨다고 한들, 영성이 부족한 내가 아주 가끔 받는 은혜라고 해봐야 이틀이면 잊고 사는 것을… 나에게는 수요 예배가 분명 필요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내가 찾았던 건 기도였다. 어쩌다 나가 봤던 수요 예배에서, 어쩌다 보니 기도를 하게 됐다. 나는 정말 기도로 나아갔다. 그리고 그렇게, 코로나 사태로 교회가 문을 닫기 전까지 나는 수요 예배를 지켰고 스스로 추가한 장치인 주중 그 한 번의 예배에서 주일에는 찾을 수 없는 또 다른 은혜를 맛보게 되었다.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다.
찬양팀 이야기를 또 안 할 수가 없다. 나는 사실 찬양팀을 교회에 발을 디뎠을 때부터 눈여겨보고 있었다. 정말이다. 하지만 나설 수가 없었다. 앞서 말했듯, 더 자세히 말할 수 없지만 나는 세상 사람과 구별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런 내가 찬양팀에 속하여 찬양한다는 게, 그 모습이 하나님께 당당하지 못하고 또한 함께 찬양하는 성도들에게 시험이 될까 봐서. 한국에서 찬양팀을 하다 그만둔 이유도 바로 이러했다. 찬양팀은 나에게 큰 도전이었다. 나는 기도로 준비했다. 지난 시간 갖고 있던 마음을 교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께 받은 달란트를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에 헌신하고 싶었다. 정말, 진심으로. 그렇게 1년을 조금 넘게 섬겼다. 가슴을 뜨겁게 적시는 찬양의 은혜는 물론이요, 공동체 안에서의 사랑이 싹을 트고 무럭무럭 자랐다. 그러던 중 가만 보니 나를 제외하고 다들 찬양마다 있는 가사의 맥락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부러웠다. 나도 알고 싶었다. 나도 가사의 내용을 알고 더 자세히 찬양을, 더욱 더 자세한 은혜를 갈구하게 되었다. 곧 성경을 알고 싶어지는 마음이 생겼다. 내 삶에서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성경 공부를 그렇게 시작하게 되었다. 요즘은 자기 전 큐티를 한다. 며칠밖에 안 하고 나 이거 한다, 라고 말하는 게 아니라 꽤 됐다. 이 또한 하나의 장치이다. 순간의 뜨거움으로 잠깐의 시도로 끝난다는 게 무엇인지 나는 잘 안다. 그러나 나는 확신한다. 말씀을 향한 이 마음은 하나님께서 잠깐 주신 게 아니라는 걸. 그리고 그 마음이 사라지지 않고 내가 가는 모든 곳에, 책상 위에, 침대맡에, 거실 소파에 나를 늘 따라다닌다. 정말이지, 이러한 삶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나는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다.
내가 이곳에서 배운 건, 하나님이 일하시는 때는, 하나님의 역사 하심은 나도 모르게 이루어진다는 것. 일상을 지내다 훗날 정신을 차려보니 그제야 알게 되는 것. 아직 나는 부족하여 삶 전부를 기도로 준비하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천천히 더 많은 것들을 기도로 준비하고, 나아가고, 하나님께 받은 달란트로 찬양을 드리고 말씀을 갈구하는 삶을 살다 보니 지금껏 경험하지 못했던 은혜를 내게 부어주셨다. 나의 힘과 지혜가 아닌 하나님의 은혜와 함께했던 4년의 세월이 나를 유순하게 만들었다. 나는 아직 세상적인 부분을 내 삶에서 다 덜어내지는 못했지만, 이전보다 하나님과 천천히 가까워지고 있음을 느낀다. 꿈을 가지고 세상에 나갈 스물아홉의 청년보다, 이제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나의 미래가 기대될 때가 잦아졌다. 언젠가 있었던 수요 예배에서 목사님이 말씀하셨듯, 나의 비전은 다른 게 아닌 하나님 그 자체가 되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