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누군가 목회자인 나에게 일상 생활에서 힘들거나 쉽지 않는 부분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 주저하지 않고 이 부분을 언급할 것이다. 바로 ‘설교한 대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항상 ‘설교한 부분의 반의 반만이라도 살아 갔으면…’이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 그만큼 주신 말씀을 붙잡고 살아내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그리고 그것을 가장 체감하는 때는 예상치 못한 상황을 직면하는 순간 정제됨 없이 반응하는 악한 내 모습을 볼 때 이다. .
그렇게 선포된 말씀과 다르게 사는 내 모습을 볼 때면 내 모습이 점점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는 위선적인 모습에 마음이 무겁다. 그럴 때에 정말이지 다른 기도가 생각나지 않는다. 그저 ‘주님, 정말 불쌍히 여겨 달라고’하는 문장만 반복하게 되는 것 같다. 그렇게 내 안에 악함을 더더욱 보면서 이러다가 혹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사라지면 어떻게 하지? 라는 생각이 들게 되는데, 그런 낯을 들 수 없는 가운데 십자가의 은혜에 대한 절박함이 밀려온다. 그리고 또 염치 없게 주님의 은혜를 구한다.
내 다듬어 지지 않는 모습을 보며 하나님의 말씀을 지식적으로 아는 것과 살아가는 것에는 분명한 차이가 존재함을 절실하게 느낀다. 그렇게 일어섬과 넘어짐을 반복하는 가운데, 어느 순간 주님의 명령과 말씀이 더 크게 느껴져서 또 실패할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에 주님께 나아가는 것이 전보다 더 위축되고 움츠려 들게 된다. 하지만 그때마다 야속하게 주님은 나에게 그 상황을 피하지 않고 경험하게 하신다. 내가 무엇 때문에 두려워하고 무엇으로 불안해 하는지, 그리고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으로 합리화 하거나 대체 하려고 하는지 자존심 상하고 아프지만 그 상황을 정확하게 들여다 보게 하신다.
그렇게 멍하니 아무것도 아닌 내 모습을 보게 될 때 조금씩 마음의 가난함을 찾아오게 됨을 느끼게 된다.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서 하나님을 찾는 것이다. 정말 감사한 것은 그 가운데 주님은 내 모습을 인정하게 하시고 그 다음 해야 할 것을 작은 것부터 가르쳐 주심을 느낀다. 그렇다고 내가 전보다 무엇이 더 나은 사람이 된다는 게 결코 아니다. 악 해지면 더 악 해졌지 어차피 그 나물에 그 밥이다. 사람 잘 안 변하는 것은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래도 이러한 과정을 겪으면서 느끼는 마음 하나는 아프면서 배워간다는 사실이다.
다른 길이 있을까 생각하지만 서두에도 말했듯이 지식으로 어떻게 해보려 해도 결국 삶에서 위선적인 모습만 커져감을 느낀다. 그래서 하나님께 나아감은 정직한 것 같다. 그분이 우리를 지으신 분이시기에 어떻게 해야 우리가 철저하게 낮아지고 그분께 나아가는지 잘 알고 계신다. 다시스에서 결국 니느웨로 갔던 요나처럼 자꾸 돌아가고 피하고 싶은 우리의 모습일 수 있다. 하지만 아파야 알게 된다. 내 진짜 모습은 어떤 모습인지, 마음이 가난함이 무엇인지, 그래서 정직하게 주님께 나아가는 것이 무엇인지 배우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또 다시한번 주님을 바라보자. 우리를 가장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 가장 선한길로 가르쳐주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