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유행했던 ‘경영자 예수’란 말처럼 사회 전반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원리들을 성경에서 찾아서 우리의 삶에 접목시켜 보려는 시도들이 많이 있다. 창조과학처럼 다는 아니지만 성경에서 과학적인 증거들을 찾아보려고 하는 시도도 또 다른 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그 원리가 항상 옳고 최선이기 때문에 세상에서도 얼마든지 통한다고 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성경을 단지 종교영역에서만 가두어두면 안 되고 우리의 삶 전반에 걸쳐서 적용할 원리를 찾아보는 노력은 당연하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여기에는 분별이 필요하다.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을지니”(막 10:42-43a)처럼 많은 경우에 세상에서 진리처럼 누구나 믿고 있는 것들 중에서 성경과는 영 반대의 가르침들도 많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 중에서 대표적인 것이 효율성 내지 경제성일 것이다. 마리아가 예수님의 머리 위에 장정 1년 치 월급에 해당되는 값비싼 향유를 한 번에 다 부어버렸을 때 제자들이 화를 내면서 그녀를 나무랐을 때 예수님께서 도리어 마리아를 칭찬하신 부분이라든가, 많은 무리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 찾아왔을 때 예수님께서 그들을 떠나 한적한 곳을 찾아서 하나님께 갔다든가 혹은 다른 마을로 가신 경우도 그렇다.
이번 주 수요예배 때 살펴보았던 것처럼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에겐 부정한 땅으로 알려진 이방인의 땅 거라사 지방의 귀신들린 한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호수를 건너가다가 폭풍을 만나 죽을 뻔한 위협까지 감수하신 것도 그렇지만, 가셔서 그 사람에게 군대 귀신을 쫓아내기 위해서 그 지방의 주요 산업이었던 돼지 2,000마리를 희생시킨 것도 그렇다.
더 근본적으로 보면, 온 세상을 만드신 창조주 예수께서 그분이 지은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자신의 생명을 내어놓았다는 복음의 핵심내용을 봐서도 마찬가지이다. 경제손실을 따져보면 이것은 바보짓이다. 당신의 이익을 생각하셨다면 도무지 할 수 없는 일이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이었다. 그런데도 그분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엄청나게 손해되는 일도 마다하지 않고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위해서 대신 십자가 위에 죽으셨다.
효율성을 따라서 스케줄을 짜고 우선순위를 정하라고 요구하는 것이 진리처럼 통용되는 이 세상에서 예수님의 마음과 인격을 닮아간다는 것은 가히 혁명에 가깝다. 정말 그분이 어떤 분이신지, 그분이 어떤 가치와 생각을 가지고 이 땅을 사셨는지 더 알고 닮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