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교회 식구들 초대해서 바비큐라도 하면 나이 차가 많이 나서 재미없을 수도 있는데도 교회 동생들과 잘 놀아주는 여호수아를 보면 다들 ‘교회 오빠’라고 불러준다. 반면 생각이 깊고, 감성도 풍부해서 어떨 때는 세 딸보다 더 섬세해서 좋고 싫고, 하고 안 하고가 확실한 것 같다. 아무리 자녀가 다섯이라도 다 성격이 달라서 대응하는 방식도 달라야 한다. 한 아이에게 통하는 방식이 다른 아이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확실히 여호수아는 세 딸과 다르게 대해야 할 것이 있다. 어릴 때부터 성경에 대한 질문도 날카롭고 깊었고 그것을 그 나이에 맞게 설명하기가 쉽지는 않아도 나름 설명을 해 주면 잘 받아주었다. 나이에 비해서 참 성숙해서 대화의 파트너가 되는구나 할 정도였다.
최근에 여호수아가 사춘기구나! 그런 느낌이 확 와서 내심 긴장이 되었다. 이번 주에 바지를 갈아입는데 같은 방에 있던 나와 여준이더러 나가주라는 것이었다. 학교에서 남녀 차이에 대해서 가르친다고 하더니 그것을 배워서 저러나 싶어서 알겠다고 나가 주었다. 이런 것보다 사춘기의 특징 중에 가장 눈에 들어오는 것은 예의 없이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어릴 때는 그것을 나무라면 숙연한(?) 태도로 듣고 순종이라도 하지만, 사춘기가 되면 그냥 무시하거나 아예 상대 자체를 하지 않아버린다. 그렇다고 아빠의 권위로 제압하려 하면 자칫 관계까지 틀어질 수 있기 때문에 그럴 수도 없다. 그래서 한국 정서가 많은 내가 이렇게 버릇없이 행동하는 것을 보면 속이 부글부글 끓는데, 아무쪼록 잘 참아주며 받아내기를 지금부터 기도하고 있다.
이번 주에 앞으로 들어갈 중학교 유니폼을 가지러 학교에 갔다. 거기서 초등학교 친구 여럿을 만났고 유니폼을 가지고 나올 때도 평소 친한 한 친구를 만나서 주차장까지 얘기를 나누며 나왔다. 그리고 차를 타자마자 대번에 ‘우리 차는 똥차’ 하면서 빨리 차 바꾸라고 했다. 친구 아빠 차에 비해서 너무 오래되고 고장도 많으니까 창피했던 모양이다. 차 사려면 얼마나 돈이 많은 데부터 시작해서 목사직이란 돈 버는 것을 내려놓고 사는 직업이고, 아빠는 여왕 앞에 선다 해도 그분께 예의는 갖추지만 위축되지는 않을 정도로 이 삶에 자부심을 있다는 말까지 대화가 발전되어갔지만 그런 모범적인 답이 그 나이의 아이에게 먹힐 리가 없었다.
복음의 가치가 세상의 부귀영화보다 더 낫다는 것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 갑자기 생각이 많아졌다. 중학교에서 만날 또래 친구들, 학교에서 배우게 될 세속적인 교육에 맞서서 성경의 가르침을 스스로 적용해 가야 할 여호수아를 어떻게 도와줘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이제 내가 이래라저래라 말한다고 해서 곱게 따라올 나이가 지났구나, 정말 하나님께 맡길 때가 되었구나! 그 생각이 많이 드는 한 주간이었다.
다른 사람의 인생에 이렇게 깊이 간여한다는 것, 그것도 부부와 또 다르게 성장하는 모든 과정을 오랜 기간 함께 하는 부모로 산다는 게 대단히 힘든 일이지만 동시에 사람이 경험할 수 있는 최고 특권의 자리인 것 같다. 정말 주님께서 우리 여호수아를 잘 키워주셨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