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를 영어 성경에 grace라는 단어 외에도 favor(호의, 친절)라는 말을 쓴다. 이 favor는 나의 control를 받지 않고 우연히, 정말 예상치도 못하게 나의 외부로부터 찾아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 장래에 이것을 계산하지 않고 살아가지만 돌아보면 내가 계획해서 되어진 일보다 우연히 찾아온 이 favor가 더 중요함을 알 수 있다. 우연하게 만나서 사랑해서 결혼을 하고, 우연히 만난 사람의 친구 소개로 좋은 직장을 들어가고, 우연히 만난 사람 덕분으로 꼭 필요한 도움을 받고…
내 삶만 돌아봐도 그렇다. 부모의 손길 없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단돈 십 원도 유산으로 물려받은 것이 없지만 그래도 이제까지 먹고, 자고, 입고, 공부하며 이제는 다른 사람을 위해서 살아가는 꿈을 꾸는 자까지 된 것은 다 하나님과 그분이 준비했다가 내게 보내주신 많은 분들의 favor 때문이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특별한 이유도 없이, 괜히 잘해주시는 많은 분들이 내 삶에 얼마나 많았는지 모른다. 그분들은 세상적으로 볼 때 특별하거나 대단한 분들이 아니었다. 본인은 월세방에 살면서도 포도송이가 탐스럽게 열리는 가을철이면 그 중에 가장 좋은 녀석들을 모아놓은 한 박스를 드시라고 매년 잊지 않고 보내주셨던 지극히 서민들이셨다.
나는 여기 런던에 와서도 그런 favor로 살아가고 있다. 특별히 우리가 사용하는 영국교회 peter목사님이 나와 우리교회에서는 하나님이 주신 favor였다. 영국 분들이 콧대가 다 높은 분들인데, 그나마 나에게 영국 분들은 참 친절하고 겸손한 분들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도 아마도 peter목사님을 만났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목사님을 만나면 꼭 내 아버지 같다는 생각이 든다. 특별히 무엇을 잘 해주어서가 아니라 만나 뵐 때보다 “오~!”하며 환하게 웃어주시고, 우리 교회 아이들을 만나면 짓궂게 장난도 치고 하이파이브하며 손바닥을 쳐주는 이런 모습이 우리의 마음을 얼마나 기쁘게 해 주었는지 모른다.
그래서 그런지 오늘 peter목사님이 은퇴를 하신다고 하니 마음 한켠에 많이 아쉬움이 남는다. 아버지같은 이 분을 이제는 자주 뵙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더 그런 것 같다. 나도 목사님처럼 작은 친절로 많은 사람을 기쁘게 해 주는 따뜻한 favor를 가진 사람이 되기를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