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6월, 전도하며 걷는 아침 공기가 좋고, 예수님에 대해 이야기 할 때 조금씩 밝게 변하는 눈빛들이 매 주 기다려 질때 쯤 이었습니다. 담임 목사님 자신도 매주 직접 전도를 다니시고, 당시 암노스 미니스트리에서 하는 교회개척학교 (Church Planting School: 영국 땅에서 교회를 세우고자 하는 사역자들을 위한 학교) 에서 수업을 들으셨습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 교회를 통해 하실 일이 어쩌면 우리가 현재 발 붙이고 있는 이 곳, 런던에 더 있겠구나 라는 마음으로 몇년 간 가던 인도에서 영국을 전도하는 어라이즈로 우리 교회의 선교지를 바꾸게 되었습니다.
저도 그 마음을 자세히 보고 싶었고, 그 계획에 참여하고 싶은 마음에 어라이즈에 참여했습니다.
무슨 일을 하려 하시는지, 어떤 마음을 갖고 계시는지.
하지만 항상 하나님은 우리의 계획과는 다르게 더 큰 그림을 그리시며 일하시는 것 같습니다.
저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웨일즈로 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두려움보다는 설렘이 컸습니다. 어쩌면 나에게 런던 뿐 아니라, 더 넓고 다른 영국을 만나게 하시지 않을까? 그 곳엔 어떤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을까?
웨일즈에 있는 내내, 런던과는 판이하게 다른 풍경,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화려한 런던, 잉글랜드에 가려져 소외된 곳, 시간이 멈춘 듯한 곳의 사람들. 젊은 사람들은 거의 없고 머리가 하얗게 센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꿋꿋이 교회를 지키시는 모습들. 예전의 부요함과는 다르게 외롭고 희망은 보이지 않아 하나님은 더 이상 믿기 어렵다고 말하는, 때로는 울분에 찬 목소리로 이야기 하던 이 곳의 사람들을 만나며 이 영국이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생각했습니다.
당장의 답을 알 순 없었지만, 그 다음날 우리 나라에 복음을 전하러 왔던 토마스 선교사님이 있던 하노버 교회에서 조금의 단서를 찾게 된 것 같습니다. 그 당시 저는 학교에서 콘트라 플로우(Contra-flows); 제 1세계에 영향을 받았던 주변부 나라의 문화가 시간이 흘러, 역으로 제 1세계에게 영향을 주는 것, 이론에 대해 배울 때 였습니다. 이 책 속의 글이 지금 웨일즈에 있는 나의 모습을 그대로 묘사하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1866년, 예수에 대해 들은 적도 없는 조선에 영국의 한 청년이 왔다. 그는 복음이 한국에 전해지는 것을 보지는 못했지만, 그 작은 씨앗은 점점 퍼져나갔다. 시간이 흘러 우리 할머니와 어머니를 따라 나도 예수를 믿게 되었다. 그리고 150년이 지난 후인 2016년, 한국인인 내가 영국에 와서 집 마다 문을 두드리며 복음을 전하고 있다.”
아버지의 은혜는 참 일방적이고 그 계획은 우리의 생각을 넘습니다.
수 백년의 타임라인을 짜시면서 영국에서 한국으로, 한국에서 영국으로 자신의 아들인 예수를 전하게 하시며, 절 영국으로 불러주셨습니다. 영국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은 아마도 집 나간 내지는 잃어버린 첫째 자식을 찾는 절절한 마음이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작은 저에게 자신이 이 사람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제 마음에 알려주셨습니다. 만났던 모든 이들의 분노와 아픔에 같이 울게 하시고, 사랑이 가득찬 맘으로 안게 하셨던 것은 저의 마음이 아닌 주님의 마음이셨음을 확신합니다.
우리는 매일, 혹은 종종 하나님의 마음이 무엇인가를 궁금해 합니다. 모든 것을 알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가장 확실하고 생생하게 알 수 있는 방법은 주님이 사랑하시는 그 사람, 사람을 만나러 가는 것입니다. 저도 어라이즈에 가는 발걸음이 두렵기도 하지만, 다시금 저에게 보여주시고 입혀주실 아버지의 마음이 너무나 기쁘기에 기대하는 맘을 가지고 그 걸음을 옮겨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