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학교 1학년 때 일대일로 성경공부하면서 예수님을 만났다. 일대일 성경공부를 시작한 지 일곱 번째 만남에서 사도행전 2장에 나오는 초대교회의 아름다운 공동체의 모습을 공부하는데 ‘하나님이 살아계시는구나’ 그것이 신기하게 믿어졌다. ‘하나님께서 왜 선악과를 만들었느냐?’로부터 해서 ‘왜 신자는 술을 먹으면 안 되느냐?’ 등 수많은 질문들로 나를 가르쳤던 간사님을 난처하게 했지만 그 시간 후로 내 자신이 완전히 달라졌다.
물론 그 후로 성숙해가는 과정이 있었지만 그 일곱 번째 만남이 내 인생을 바꿔놓았다. 그 이후로 내 마음에 가장 큰 확신은 예수님께서 나를 구원하기 위해서 십자가에 대신 죽으셨다는 사실이었다.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 아버지, 죄인인 나를 위해서 하나밖에 없는 아들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게 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이 고백만 하면 감동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여러 어려운 일들이 있어도 한 번도 하나님을 원망해 본적도, 그 사랑을 의심해 본 적이 없다. 왜냐하면 내가 죄인으로 있을 때에도 독생자를 대신 죽게 하셨는데 뭘 내게 아까워하시겠느냐(롬 8:32)는 확신이 너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보면 하나님께서 내 인생을 바꾸실 때 사용하신 것은 ‘십자가’였다. 신비로운 체험도 할 수 있고, 심지어 중한 병에 걸렸다가 나아서 그것이 예수님을 믿는 계기는 될 수 있지만 그 자체가 예수님을 믿은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 예수님 당시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통해 병 고침을 받고 귀신이 떠나가는 체험을 했지만 그들이 다 예수님을 믿은 것은 아니었다. 예수님의 말씀에도 내 이름으로 선지자처럼 예언도 하고 귀신을 쫓아내는 일을 해도 내가 모른다고 할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 경고하셨다(마 7:21).
결국 우리가 하나님을 참으로 알고 그분과 교제하게 되는 유일한 길은 십자가를 통해서이다. 그래서 바울도 당시의 많은 유대인과 헬라인들이 십자가에 못 박힌 한 젊은이를 하나님이 보내신 구원자로 믿는 것을 거리끼고 미련한 것이라고 여겼지만 그것만 전하기를 고집했고 그러면 신기하게도 그것을 믿는 자들이 있다고 하셨다. 하나님은 이 어리석게 보이는 십자가를 통해서 사람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신다고 하셨다(고전 1:18-25).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십자가는 성경의 핵심이어야 한다. 한 번 생각해보라! 이 세상을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의 아들 아니 하나님 자신이 친히 사람이 되어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대신해서 죽으셨다? 이것만큼 쇼킹한 일이 이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우리는 제대로 십자가 앞에 서봐야 한다. 그 순간 내가 누구인지, 하나님은 어떠한 사랑으로 나를 사랑하셨는지를 깨닫게 된다. 이번 수련회 때 이 놀라운 십자가 앞에 서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