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교회 내 활동 중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예배와 셀모임이다. 예배가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계명에 순종하는 것이라면 셀모임은 이웃을 사랑하는 계명에 순종하는 것이다. 우선순위를 보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우리 삶의 원동력이기 때문에 예배하는 일에 헌신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교회 홈피에 우리교회를 설명하는 대표 문구 중에 ‘영광스런 예배에 목숨 거는 교회-크고 대단해 보이는 화려한 사역보다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예배자가 더 되고 싶습니다.’라는 말이 들어가 있다.
예배의 성장 과정을 보면 공동체 예배에서 개인 예배로 나아가는 것이 맞다. 교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기도하고 준비하여 드리는 예배를 소홀히 하면서 개인적으로 드리는 예배가 잘 이뤄질 수 없다. 찬양팀이 하나님께 드릴 곡들을 신중하게 선정해서 그것을 악기와 목소리로 몇 시간 또 연습하고 자막까지 띄워서 우리가 편하게 찬양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목회자는 주중에 성경을 가지고 많은 시간을 씨름하며 연구하고 기도해서 얻은 그 하나님의 마음을 전하는 그 예배가 풍성한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내 혼자 예배하는 곳보다 ‘두세 사람이 모여 예배하는 곳’에 주께서 함께 하시겠다 약속하셨다. 정말 개인 예배를 바로 세우고 싶으면 첫 단추, 공동체가 모여서 예배하는 공식예배부터 바로 세워야 한다.
두 번째는 찬양과 말씀과 기도 등 일정한 형식을 갖춘 예배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가는 삶으로의 예배로 나아가는 것이 옳다. 대학시절 나름 스스로 진지하게 신앙생활한다고 여기던 한 친구가 수요일에 교회에 왔어도 예배에 참석하지 않고 교회 내 다른 방에 있다가 교회 어른에게 한 소리를 들은 모양이다. 그 주 대학부 모임에서 ‘나는 삶으로의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그것도 알지 못하고 꾸짖으셨다.’며 푸념 섞인 말을 했던 것이 기억난다. 의식을 갖춘 예배, 어쩌면 너무나 쉽고 편하게 드리는 예배도 잘 드리지 못하면서 치열한 전쟁터와 같은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그 삶으로의 예배를 드린다고 한다는 것은 듣기 좋은 구호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를 사모해서 빠지지 않으려고 하고, 오더라도 어린아이처럼 간절하게 사모하는 성도들이 훨씬 더 개인적으로 혼자서 드리는 예배도 잘 드리고, 삶에서 정말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몸부림치는 성도들이 주중에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 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 피곤하고 바빠도 없는 시간을 쪼개어 가며 말씀묵상과 기도시간을 가지려고 애쓴다. 빈 깡통이 요란하다고 제대로 경건생활이 세틀되지 않은 사람들이 어디서 들은 것은 있어 가지고 ‘삶으로 드리는 예배’, ‘개인적인 하나님과의 관계’를 운운하며 경건한 척한다.
구구단을 외워야 더 어려운 문제도 풀 수 있고, 와이셔츠도 첫 단추를 잘 끼워야 폼이 나듯이 신앙생활에도 순서가 있는 법이다. 스스로 믿음이 약하고, 주님과의 관계가 아직 세워져 있지 않다고 여긴다면 교회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교회가 있는 이유가 성도를 온전하게 하기 위해서이다(엡 4:11-12). 스스로 신앙적으로 미숙한 아이라 여겨지면 혼자 하려고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몸을 의지해야 한다. 그래야 제대로 발육이 이뤄지는 것이다. 교회생활은 정말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