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한국에서 부교역자 시절 선교에 미쳤다(?)고 하시는 목사님을 담임 목사님으로 8년간을 모신 적이 있었다. 그분은 선교 이야기가 나오기만 하면 밤을 새우면서 말씀하시는 분이셨다. 유럽에서 선교사로 오셨다가 한인목회를 하면서 난민촌선교, 북한선교를 하시다가 중국이 문이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한국으로 오셔서 목회하시면서 중국 선교를 초창기부터 시작하셨다.
나는 한 번도 필드에서 선교를 해 본 적이 없지만 여기 와서 선교와 관련해서 이런저런 얘기를 다른 목회자나 선교사님들과 하다보면 내가 의외로 선교에 대해서 생각이 앞서 가 있다는 것을 느낄 때가 있다. 선교에 헌신하는 분들이 나의 선교 비전을 듣고서는 ‘목사님처럼 선교에 대해서 전략적으로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지 않아요.’라고 하실 때 내가 정말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평생 선교를 위해서 살아오신 그 담임목사님과 함께 한 그 세월이 나도 모르게 선교사마인드를 갖게 한 것 같다.
그 목사님은 매월 한 주간은 선교지를 방문하셨다. 한 교회를 목회하시면서 선교지를 매월 방문하시는 본을 나는 아직 만나보지 못했다. 그분의 선교 방식을 보면 참 특이했지만 그러나 가장 성경적이셨다. 매번 갈 때마다 교회에 모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기도하면 성령께서 많은 병자들을 낫게 역사하셨고 그 결과로 또 수많은 사람들이 모이면 모금한 선교헌금으로 교회 건물을 지어주셨다. 그렇게 건물을 지어줄 때도 다 대어주지 않고 1/3 정도는 그 성도들이 헌금해서 짓게 하고 소유권은 그 교회에 그냥 주셨다. 정말 아비가 자식에게 그냥 무상으로 유산을 남겨주듯이 그런 마음으로 선교를 하셨다. 그렇게 세워진 교회들이 수백 개가 될 것이다. 지도자 생활비나 신학생 양육을 지원하는 일도 많이 하셨다. 그리고 한국에 한참 외국인 근로자들이 몰려들 때 그들을 위한 교회를 지원하고 돕는 일을 하셨다.
은퇴 후에도 직접 그런 교회를 개척해서 그 중에 일부 청년들은 신학교에 보내서 목회자를 만드는 일을 하셨다. 지금도 제주도에서 중국의 지도자들을 불러서 관광도 시켜주면서 그들을 재양육하는 일을 하고 계신다. 사람이 누구를 만나느냐 따라 그 마음과 삶이 달라지는 것 같다. 아내는 나를 보면 가끔 그 목사님을 닮았다는 핀잔을 준다. 너무 선교에 미친 것 같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