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일상에서 가장 많이 쓰는 말이지만 실제로 제일 모르는 것이 사랑인 것 같다. 나이가 들고 믿음이 자라가고 인격이 성숙해지면서 예전에 몰랐던 사랑에 대해서 깨닫게 된다. 작년 한 해 사랑에 대해 새로 알게 된 사실은 ‘사랑은 착한 것과 다르다.’, ‘사랑은 사교성이 좋아 많은 친구를 가지고 있는 성격의 문제가 아니다.’ 등이다.
솔직히 예전에는 목회자로 살아간다는 것이 왜 힘든지 몰랐다. 흔히들 누가 신학하겠다고 하면 왜 그렇게 힘든 일을 가느냐고 말린다고 할 때 잘 이해가 안 되었다. 1991년부터 교육전도사로 시작해서 강도사, 부목사를 거쳐 여기 와서 처음으로 담임목회자로 9년을 사역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야 ‘아 이것이 목회구나. 아 이래서 목회가 힘들다고 하는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제는 목회가 왜 힘든지를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목회자로 살아가는 고달픔이라는 게 단지 재정적으로 넉넉하지 못하다. 혹은 기능적으로 설교나 성경을 가르치는 일에 재능이 있어야 한다는 것으로 설명될 수 없다. 세상에 어떤 직업이든 돈을 적게 벌고 그 분야에 걸 맞는 재능이야 다 요구되는 것이다. 그런데 유독 목회자에게 강조되는 것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죄인인 인간이 이 사랑이 없는 것이야 당연한데 예수를 믿고 목회자의 길을 들어섰을 때에는 사랑함에 탁월해야 한다. 이것이 목회자에게 필요한 제일 중요한 덕목이다. 물론 외적인 교회 성장은 설교의 능력이나 양질의 프로그램이 가능하게 하지만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잘했다고 칭찬 받을 진정한 의미에서의 성공적인 목회는 ‘얼마나 내가 맡긴 영혼을 네가 사랑했느냐?’에 달려있다.
요즘 공부하고 있는 요한계시록에서 일곱 교회들을 살펴보고 있는데, 고 옥한흠 목사님도 말씀하신 적이 있었지만 교회를 향해서 하신 주님의 말씀 중에 교회 사이즈를 보고 칭찬과 책망을 하신 적이 없다는 것이다. 뭐든 경제적인 효율에 따라 가치를 매기는 사람의 눈에나 그게 중요하지 한 영혼을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그분께는 그건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새해 들어서 사랑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다시 배워가는 것이 있다. 역시 나는 정말 사랑이 없구나를 깨닫고 있다. 우리의 삶이 힘든 이유는 내 주변 사람이 사랑스럽지 않고 이런저런 이유로 미워지기 때문이다. 사랑할 능력을 갖추지 못하면 우리가 지금보다 더 많은 것을 소유하고 더 높은 지위에 올라가더라도 결코 행복하지 않을 것이다. 그저 육체적으로 자극을 주는 즐거움에만 더 탐닉하는 얄팍한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사랑이 무엇인지를 알아가는 지름길은 내가 사랑이라 하시고, 사랑하는 것이 제일 중요한 계명이라 하신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이다. 분명한 건 내가 더 사랑하는 사람으로 자랄수록 내 삶이 편안해진다는 것이다. 배우는 과정에선 힘들지만 배우면 사는 게 가볍고 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