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다양한 통로를 통해 위로를 받습니다. 누군가의 따뜻한 섬김으로 먹을 것과 필요한 물품들을 공급받으며 위로를 받습니다. 때로는 따뜻한 말 한마디의 진심 어린 응원이 그동안 혼자 고민하고 앓고 있었던 마음의 답답함을 잘 삼켜내며 다시금 일어설 용기를 주기도 합니다. 그러한 위로자들 가운데는 그러한 어려움을 경험했었고 그래서 그 마음의 온기를 나눠주는데 더 자연스레, 부담 없이 나눠주는데요.
지난주 우리 교회에서 큐티책으로 사용하는 GT 가운데, 고린도전서를 마치면서 바울은 그가 위로 받은 모습을 이야기합니다. 집필하신 목사님의 해석도움 내용을 빌리면, 바울은 브드나도와 아가이고라는 귀한 인물을 소개합니다. 그들이 바울을 대신하여 성도들의 부족한 것을 채워 주었고 그들의 위로가 준 기쁨을 언급하며 이 같은 자들을 알아주라 권면합니다. 그들은 노예로 추정되며 이곳에만 짧게 이름만 등장하는 무명의 사람입니다. 하지만 가장 어려울 때 찾아주고 떠나지 않는 사람이었고, 다른 사람이 해야 할 일의 부족한 점을 보충해주는 사람이었죠. (해석도움 내용옮김)
사실 바울에게 필요한 사람은 바울을 잘해주고 공급해주는 것보다 어려운 교회 상황에 있어 그 자리에서 묵묵히 주님 바라보며 주님의 마음으로 섬기고 나누는 자들이었습니다. 성경은 그들이 한 많은 일들을 장황하게 소개하고 있지 않지만 가장 어려운 시기에 그들의 자리를 지켰습니다. 아마 노예였기에 그들이 나눌 수 있는 것이 그리 많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리스도의 사랑(희생)을 먼저 깊이 경험한 자들이었고, 그래서 시간을 드렸을 것이고, 남들이 하지 않는 궂은 섬김과 그 가운데 행한 진실함은 바울에게 무엇보다 기쁨이었을 것입니다.
누군가를 위로하고 섬기는 것에도 마케팅과 전략이 들어가는 사회입니다. 그에 대한 보상을 은근히 따져보죠. 그러한 관점에서 교회에서 이런 자리의 섬김은 고된 삶 가운데 자신도 챙기지 못하는 바보 같아 보입니다. 그럼에도 우리 공동체 안에 이미 그러한 섬김과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고 계신 분들이 있음을 엿보게 됩니다. 먼저 그러한 귀한 섬김을 주님께서 더욱 귀히 여겨 주시고 기억해주시길 바울과 같은 마음으로 기도합니다. 그리고 우리 또한 위로하길 원합니다. 고린도 전서 16장18절 말씀 “그들이 나와 너희 마음을 시원하게 하였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이런 사람들을 알아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