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 온지 17년이 되어가는데도 최근까지 난 ‘How are you?’란 질문이 어려웠다. 요새 말로 ‘답정너’스런 질문인데, 이걸 진짜 자기 안부를 묻는 질문으로 받아들이면 서로 난처한 상황이 생길 수 있다. 그저 웃는 얼굴로 ‘good’ 해주면 상대도 웃으며 끄덕하곤 자기 하던 일로 돌아가는게 일반적이다. 빈말을 싫어하는 성향상 이런 형식적 대화에 적응하는데 시간이 좀 걸렸는데, 이제는 나도 제법 능숙해졌다. 직장생활을 하다보니 어차피 어제가 오늘 같고 다음주도 이번주 같다. 매일 어떻게 지내냐는 질문을 들으면서도 정말 내가 지금 어떤지는 잘 모르고 사는 무감각한 시간이 많아졌다.
8월 한달간 북클럽에선 위화의 ‘인생’을 읽었다. 하정우가 감독으로 리메이크한 영화 ‘허삼관매혈기’의 작가이기도 한, 우리나라에서 가장 잘 알려진 중국 작가중 하나다. 소설은 시골에서 밭을 갈고 있던 노인 ‘푸구이’가 한 남자를 만나 지난 삶을 회고하며 시작된다.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 등 험난한 중국 근현대사를 거쳐온 노인의 인생은 참으로 기구하다. 보통 사람은 살면서 한두번 겪을까 말까한 사건사고들이 평생을 따라다녔다. (혹시 책을 읽기 원하는 분들이 있을 수 있으니 그 사건사고가 무엇인지 쓰지 않겠고 ‘만약 내게 이런 일이 닥쳤다면 삶의 의지를 잃어버렸을 것이다’라는 회원님들의 소감으로 대신하겠다.) 그런데 이 소설은 시종일관 담담하게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마치, 누군가의 눈엔 너무도 비극적인 푸구이의 삶도 그저 수많은 삶들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듯이.
책의 서문에서 작가는 ‘사람은 살아가는 것 자체를 위해 살아간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라고 말한다. 알듯 말듯한 문장이었다. 그러다 이날 모임 중 우린 기억에 남는 사건들 위주로 각자 인생의 타임라인을 정리해보는 시간을 가졌는데, 그때 깨달았다 – 드라마 같은 사건사고는 드물지만 우리에겐 주어진 삶 안에서 그때그때 견뎌내야 하는 일상이 있었다는 것을. 미래를 생각하며 잠 못들던 밤들, 극복해야 했던 컴플렉스, 뜻대로 되지 않는 관계들, 혹은 반복되는 삶의 따분함 같은 것들 말이다. 즉, 우리 삶은 페이지가 휙휙 넘어가는 소설보단 문장과 문장 사이 빈공간으로 말하는 시(詩)에 가깝지 않을까.
휴머니스트인 작가는 ‘사람에겐 어떤 환경에서도 삶을 살아가게 하는 힘이 있다’는 메세지를 전하고 싶었던 것이겠지만 믿는 우리에겐 다른 차원이 존재한다. 평범해보이는 내 인생을 지금 이 순간도 붙들고 계신 분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내게 얼마나 ‘실재’인가? 내가 늘 말하는 ‘성령님과의 동행’은 매일 나의 일상에 새로운 에너지와 역동성을 제공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것은 나의 대인관계에서 남들도 느낄 수 있는 방식으로 드러나고 있는가? 이 질문들로 매일 아침 듣는 ‘how are you”가 새롭게 다가온 한주였다. 살아간다는 건 그 자체로 귀하다. 그 삶을 써나가는 시인과 함께라면 더욱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