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민주화 운동이 격렬할 때 운동권학생들 사이에 널리 읽혀진 ‘강철서신’이라는 책이 있다. 그 책의 저자는 김영환 씨인데 개인적으로 복사해서 주변에 몇 권 나눠준 것이 소문을 타고 암암리에 인쇄되어 배포된 것이었다. 불법서적인데도 60만권이나 팔렸다고 하니 대단히 유명한 책이었던 것 같다. 이 책은 북한의 김일성 주체사상을 학습하기 위해서 쓰여진 책인데 그의 헌신으로 당시 운동권은 마르크스-레닌을 따르는 운동권(PD)보다 주체사상을 따르는 운동권(주사파 NL)이 주류를 이루게 된다. 이렇게 젊은 나이에 주사파의 대부가 된 김영환씨는 나중에 간첩을 통해서 북한으로 몰래 넘어가 김일성을 두 차례나 만나게 된다.
당시 동유럽의 사회주의 국가들이 몰락하고 구 소련도 위태위태하던 시절 사상적인 고민을 심각하게 하던 그는 북한의 학자들과 김일성 주석을 만나 주체사상의 관점에서 이런 사태를 어떻게 봐야하는지 토론하고 싶었다. 그런데 북한의 학자들은 교과서처럼 답변들이 다 동일했고 주체사상의 저자인 김일성은 주체사상의 기본적인 개념도 모르고 있는 것을 보고 큰 실망을 하게 된다. 그러다가 90년대 후반에 대거 탈북자들이 한국에 들어오면서 북한의 실제 상황을 접하고서는 북한인권운동가로 전향한다. 히틀러 수용소보다 더 악랄한 북한의 정치수용소, 김일성 한 개인을 위해서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조차 없는 북한 인민의 실상을 보고서 평생 혁명가로 살기로 한 자신의 양심의 소리에 순종한 것이다. 실제로 북한 접경인 중국 지역에 가서 지하조직을 만들어서 북한에 사람을 들여보내어 북한정권을 무너뜨리는 혁명시도를 암살의 위협을 무릎 쓰고서 한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진리도 아닌데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하나의 사상에 저토록 목숨을 걸고 살아가는 사람도 있는데 나는 어떻게 살고 있나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하나님의 독자의 죽음, 그것으로 인류의 근원적인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 완전한 새사람과 새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복음이 나에게 그리고 우리 교회에 목숨을 거는 사상으로 받아들여졌는지 진지하게 반문해 보기도 했다.
복음이 내 평생 목숨 걸고 살아갈 사상이 되도록 해야 하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정치 이념이 첨예하게 나눠지고 있는 한국의 현실을 보면서 내가 어느 쪽에 속한다고 하는 동시에 나머지 절반을 잃게 된다. 예수님이 사시던 당시에도 더 심했으면 심했지 이런 이념적인 갈등이 있었는데 그분은 ‘하나님 나라’라고 하는 독자적인 길을 제시했다. 그 나라를 위해서 목숨을 버렸고 그의 제자들도 그 길을 따랐다. 한 번뿐인 인생, 그것도 예수께서 피 흘려 돌아가심으로 새롭게 주신 그 값진 생명을 가지고 진짜 사람을 살리는 예수 운동, 복음이라는 확실한 사상에 목숨을 거는 자가 되고 싶다. 그런 제자들을 세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