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오늘도 바빠?” “조금…” “아빠 예배하지 마” “왜?” “여준이와 놀아줘” 세 살 여준이가 요즘 자주 하는 말이다. 모든 예배와 모임이 온라인으로 전환된 후에 시간이 많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바쁜 것 같다. 가족들도 왜 예전보다 더 바빠졌느냐고 푸념섞인 말들을 한다. 새로운 집으로 이사해서 환경이 달라지면 이것저것 할 일이 많듯이 아직도 새로운 상황에 적응 중인 것 같다.
무엇보다 라이브 예배를 위해서 유튜브와 페북으로 동시에 송출하는 법, 화질과 음향을 업데이트시키고, 화면에 자막을 실시간으로 넣고, 거기다 통역팀까지 동시에 하려니 신경 쓸 게 많았다. 때론 태규와 새벽까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끙끙거린 적도 있었다. 그래서 이제는 어느 정도 감을 잡아서 안정이 된 것 같아서 앞으로는 세련되게 외피를 입히는데 신경을 더 쓸 생각이다.
다들 코로나 바이러스 이후에 우리의 삶이 많이 달라질거라고들 말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예전과 별반 다를 바 없이 살아갈 수도 있다. 하지만 10년 전만 해도 모바일을 가지고 이렇게 많은 일을 할 수 있을지 아무도 몰랐다. 마차를 타던 시절 그것과 관련된 수많은 직업군들이 자동차의 개발로 하루아침에 없어지고 자동차 관련 업종들이 새롭게 생겨났듯이 AI를 통해서 우리가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우리 앞에 펼쳐질 것이다.
하지만 AI 시대에 교회가 전하는 복음은 더 각광을 받을 것이라는 예견이 있다. 모든 게 프로그램화되다 보니 도리어 매뉴얼적인 것이 매력을 더 끌 수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SNS의 발전으로 소통의 홍수 속에 살지만 사람은 더 외로움을 느껴서 오히려 직접 만나서 사람 내음을 맡으면서 교제하는 것을 더 원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교회가 시대의 흐름에만 충실하려 하고 더 중요한 본질에 소홀하면 이것도 저것도 아닌, 맛을 잃어 밖에 버려져서 짓밟히는 소금처럼 될 수 있다. 흥미만 있고 하나님의 임재가 없는 예배보다, 오르간 치며 예배해도 임재가 있는 예배가 훨씬 더 낫다.
하지만 우리가 복음의 본질에 충실하게 살아가고 있다면, 그 다음에 신경쓸 부분은 지금 시대의 흐름에 맞는 외피를 입는 것이다. 이번에 두 달여간 온라인으로 모든 예배와 모임을 진행하면서 의외로 우리 사회가 온라인에 의해 상당 부분 움직이고 있고, 이런 현상은 더 가속화 되겠구나 하는 느낌을 크게 받았다. 이미 그 전부터 이런 세상에 나 역시도 몸담고 있었지만 그 실체를 모른채 살아온 것이었다. 그래서 지금의 상황이 끝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도, 목회사역 스타일은 이 시대에 맞는 외피를 입어야 하겠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요즘 내 책장에 더 관심이 많이 가는 것이 주석과 교리서들이다. 그런 책들은 반복해서 읽어도 늘 새로운 것들이 나온다. 요즘 다시 익숙한 본문들을 정독하면서 원문도 보고 주석을 읽으면서 연구하고 있다. 한편으로 새롭게 온라인으로 강의하기 위해서 영상 제작하는 기술을 익히는 데 관심이 많다. 본질과 그것에 이 시대의 외피를 입히는 작업을 하기 위해서이다.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게 힘들다고 했던가? 그래도 유대인에게 유대인답게, 헬라인들에게는 헬라인답게 대해야 한다는 전도자의 자세를 생각해보면 그렇게 하는 게 맞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