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녀가 다섯이다. 위로 딸 셋과 밑으로 아들 둘을 두고 있다. 첫째 딸은 2년 반 전에 결혼해서 한국에서 살고 있고, 둘째 딸은 지방에서 박사과정 공부를, 셋째 딸은 대학교 2학년, 넷째 아들은 중학교 2학년, 막내아들은 초등학교 1학년이다. 주께서 결혼한 자녀에서 초등학교 저학년까지 모든 세대의 아이들을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을 키워주고 계시다.^^
자녀들 중에 제일 신경이 많이 가는 아이는 십대 큰 아들이다. 모바일 시대가 되면서 이전에 없던 고민이 많이 생겼다. 딸들에게는 중학교 올라갔을 때 모바일을 사주었다. 그런데 아들은 초등학교 졸업식이 있던 그 주간에 대부분의 반 친구들이 부모님이 사준 모바일로 몇 주 전부터 서로 전화번호를 교환하고 WhatsApp으로 대화를 나누는 것을 보고 친한 친구와 연락이 끊기면 안 된다 싶어서 좀 서둘러서 사주었다.
그런데 예전과 달라서 모바일 기능이 sns 외에도 유튜브와 여러 가지 게임 앱들이 많다 보니 절제를 시켜주지 않으면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모바일에 눈이 가 있고, 학교를 오고 가는 그 시간에도 게임을 하니 어떡하나 싶었다. 거기다 가깝게 지내는 한 목사님이 열심히 과외 시켜서 다 부러워하는 좋은 중학교에 입학을 시켰는데 중간에 게임 때문에 망쳐서 대학도 겨우 들어가게 되었다는 말을 들으니까 더 신경이 쓰였다.
그래서 처음에는 저녁 9시부터 다음날 7시 30분까지는 잠금장치를 걸었고, 학교에서 돌아오면 바로 모바일은 내 방에 갖다 놓게 했다. 대신 게임할 수 있는 요일과 시간을 정해서 할 수 있게 했고 주말은 좀 더 많이 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그렇지만 자기 또래 친구들은 다 하고 있는데 왜 아빠만 유독 그러냐고 불만을 쏟아내어서 내가 너무 심했나 싶어서 좀 더 시간을 늘여주기도 했다. 그러나 완전 자율을 주지 않는 한 불만은 그칠 것같아 보이지 않았다.
아들을 위한다는 나의 모든 노력이 도리어 아이와의 관계만 더 나빠지고,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에 대한 반항으로까지 이어지니까 여간 고민이 아니었다. 그래서 지혜를 얻고자 ‘부모와 십대 사이’라는 책을 다시 꺼내서 읽기도 하고, 하나님께 지혜도 구했다. 그때마다 내게 드는 생각은 ‘하나님은 나를 어떻게 대해주셨는가?’였다. 손쉬운 통제와 강요보다 선악과를 따 먹을 때도 막지 않는 완전한 자유를 주시고, 시간이 엄청 걸리고 생각과 마음이 복잡하고 피곤하지만 분명한 기준을 가지고 끊임없는 설득과 권면으로 자기 백성을 거룩한 길로 인도해 주셨다.
양보할 수 없는 건강한 기준을 끊임없이 제시하고, 통제는 장기적으로 이로울 것이 없으니까 스스로 절제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기 위해서 최대한의 자율은 주되 스스로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공부 분량을 정해서 내게 제출하게 했다. 지금도 눈을 뜨자마자 모바일을 보고 조금만 시간이 있어도 게임을 하는 모습이 못마땅하지만, 그래도 자신이 세운 계획대로 하려고 노력하니까 나도 그냥 모른 체하려고 노력한다. 다섯 아이를 키워도 좋은 부모가 되기는 여전히 어려운 것 같다. 그러나 주님을 의지할 수 밖에 없는 것이 감사하다. 그리고 먼저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 지 모범을 보여주신 것이 있으니까 안심이다. “오늘도 너무 부족해서 주님만 바라봅니다.”